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모교인 워싱턴DC의 하워드대학교에서 해리스 지지자들이 자리를 떠난 모습. /로이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던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도전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벽에 막혀 좌절됐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후보직을 물려받은 해리스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인사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면서 선거 막판 트럼프에 이길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지만 경합 지역을 대거 내주면서 완패했다.

그는 인지력 논란을 불렀던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권 심판 기류를 바꾸고 자신만의 독보적 콘텐츠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리스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둔 8월 초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낙점하고 대선 진용을 꾸렸다.

5일 워싱턴DC 민주당 전국위 본부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통화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후 대선까지 석 달 가까운 시간이 있었지만, 해리스는 ‘흑인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정체성에 걸맞은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리스는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 중 하나였던 여성 생식권(임신·출산·낙태 등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문제를 중점 부각하고, 민주당의 전통적 취약층인 백인 여성들의 표심을 파고드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외교·안보·경제 등 주요 현안에서 전임 바이든 정부와 어떻게 차별화할지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부통령으로 재임하는 4년 동안 국정 이인자로서 존재감이 미미했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고물가 등 경제난과 남부 국경 지역 불법 이민자 문제 등 바이든 행정부의 약점에 대한 ‘연대 책임론’에 번번이 발목을 잡히는 양상이었다. 선거 기간 트럼프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동네 주민들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는 극단적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이민자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하면서 “국경 정책의 책임자는 해리스”라고 공격했다. 이 같은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여성 대통령’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도 해리스의 ‘유리천장 깨기’ 도전을 가로막았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NYT)는 선거 전날이었던 4일 “트럼프가 이긴다면 (2016년 힐러리 클린턴에 이어) 여성 후보를 두 번 이긴 셈이 된다”며 “미국인들이 아직 대통령 집무실에 여성이 앉아 있는 장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