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장관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을 각각 발탁할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NYT)가 소식통을 인용해 11일 보도했다. 트럼프는 또 유엔 주재 대사로 엘리스 스터파닉 하원의원을 지명했다. 루비오와 왈츠, 스터파닉 모두 중국·러시아·북한 등 미국의 적성 국가들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매파로 평가된다.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대외 정책을 공언해온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강경 성향의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특히 미·중 갈등 수위가 더 높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또 핵심 대선 공약인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을 총괄할 국토안보부 장관에 부통령 후보로도 거론됐던 측근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를 낙점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에는 ‘불법 이민자 대규모 추방’ 공약 설계자인 스티븐 밀러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 겸 연설담당관을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환경보호청장에 리 젤딘 전 하원의원을 지명했다. 트럼프는 젤딘에 대해 “미국 우선주의의 진정한 투사”라고 했다. 젤딘은 트럼프가 탈퇴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가입했던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다시 탈퇴하기 위해 준비할 전망이다. 스터파닉에 대해선 “강인하고, 굳건하고, 똑똑한 미국 우선주의의 전사”라고 했다. AP 등은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트럼프가 내세워 온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충실히 이행할 후보들”이라며 “(트럼프가) 선거 직후 내각 및 백악관 핵심 참모들을 인선하면서 2기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국무장관이 유력한 루비오(53)는 쿠바 이민자 가정 출신의 히스패닉 상원의원이다. 2010년 상원 선거에서 당선돼 트럼프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에서 3선을 했다. 한때 ‘공화당의 오바마’로 불리며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기대를 모았고, 이번 대선에선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루비오는 상원 경력의 상당 기간을 외교위·정보위에서 보낸 외교·안보통이다. CNN은 이런 이력을 이유로 “국무부가 루비오에게 잘 맞는 곳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NYT도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가 마지막에 생각을 바꿀 수도 있지만 일단 루비오를 임명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쿠바계이면서도 올해 2월 한국이 쿠바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을 때 미국의소리(VOA)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오랫동안 북한의 공격을 도운 쿠바의 범죄 정권과 외교 관계를 맺은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베네수엘라의 마약 테러리스트(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정권을 돕고 한국 최대 동맹국(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테러지원국과 협력하는 것은 망신스러울 뿐 아니라 대단한 역효과를 낳는 일”이라고 했다.
북한에 대해선 과거 “정부가 아니라 일정 영역을 통제하고 있는 범죄 집단”이라 했고, 김정은에 대해선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자기 자신을 과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15년 9월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토론에선 김정은을 두고 “수십 개의 핵무기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바로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로켓을 가진 미치광이가 북한에 있다”고 한 적도 있다.
루비오는 미 의회에서 손에 꼽히는 대중(對中) 강경파로 분류된다. 지난 3월 CBS 인터뷰에서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세계 국가들이 일극 체제가 끝났다고 판단해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도 최소한 미국 주도 체제의 대안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과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 때 “레드 카펫을 깔아줘서는 안 된다”고 했고,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생각하는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를 여러 차례 공개 제기했다. 중국계 회사가 모기업인 소셜미디어 틱톡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런 성향을 감안할 때 실제 국무장관에 임명될 경우 트럼프 2기의 대중 강경 드라이브를 최선봉에서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인권을 비롯한 보편적 가치와 외교의 절차적 정당성을 중시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전쟁이 교착 상태에 다다라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트럼프의 종전론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루비오는 동북아 정세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다. 2015년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의 상·하원 합동 연설을 앞두고 “역사적 정확성, 지정학적 안정이란 이익을 위해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욱 전향적인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듬해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토론에선 ‘대통령이 되면 전용기로 방문할 곳’을 묻는 질문에 “우리의 동맹을 찾아갈 것”이라며 한국·일본·이스라엘을 언급했다. 당시 경선 경쟁자였던 트럼프가 동맹을 경시하자 “한국과 일본의 성공 스토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경제 성장도 없었다”며 “한국은 8억달러의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고 했다. 2014년 방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했을 땐 “한반도가 반드시 민주주의하에서 통일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루비오의 부친은 바텐더, 모친은 호텔 청소부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미 정가에서 아메리칸드림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돼 왔다. 플로리다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마이애미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플로리다 주의회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5선을 했다. 2010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이듬해 임기를 시작할 때 100명의 의원 중 최연소였다. 젊은 나이에 의회에 진출한 유색인종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한때 ‘공화당의 버락 오바마’라 불렸다. 2016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트럼프에게서 ‘꼬마 마코(Little Marco)’로 조롱당하기도 했지만, 경선 탈락 후엔 트럼프를 지지하며 협력해 왔다. 블룸버그는 이번 인선의 의미에 대해 “한때 라이벌이었지만 상원에서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된 사람에게 (트럼프가) 집권 2기 행정부에서 최고 직책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