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정권 인수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일가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7)다. 공식 직함은 명예 인수위원장이지만 실제로는 인사와 대외 관계를 비롯한 여러 현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트럼프 주니어가 부친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정치적 자본을 긁어모은 끝에 가장 핵심적인 정치 고문이자 게이트 키퍼(문지기)가 됐다”고 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용돈이 끊기는 날까지 38일 남았다’고 조롱하는 영상을 공유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내비쳐 파장을 일으켰다. 대선 과정에서도 1980년대생 정치 신인인 J D 밴스 상원 의원이 쟁쟁한 인사들을 제치고 부친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집권 때 트럼프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던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이번엔 공식 석상에 거의 등장하지 않아, 트럼프 주니어가 이들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집권 2기의 핵심 실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주니어는 최근 “정권 이양 과정에서 인사에 깊이 관여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대선 승리 직후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행정부를 채우겠다” “(전쟁을 주장하는) 네오콘과 매파는 2기 정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최대 압박을 가하겠다”며 인사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이 발언 이후 트럼프 당선인은 첫 집권 당시 유엔대사를 맡았던 니키 헤일리, 국무장관을 지낸 마이크 폼페이오를 콕 집어 “2기 행정부에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니어는 막후의 실력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왕국의 황태자’ ‘부친의 첫째 대리인’이라 불리는 보수 진영의 거물로 거듭났다. 대선 기간 재킷에 운동화 차림으로 미국 전역을 누비며 고액 기부자는 물론 대중을 상대로 선거 자금을 모으는 능력을 입증했다. 선거 전략가들 사이에선 “어딜 가도 만원 관중이 모인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선 승리의 열쇠였던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의 몰표를 얻는 과정에서도 부친과 50~60살씩 차이나는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했다. 미 매체 액시오스는 “트래시 토킹(상대를 자극하는 말)에 능하고 RINO(반트럼프 성향 온건파 공화당원)에 대한 공격을 즐긴다는 면에서 부친을 닮았다”고 했다.
“트럼프(아버지)만 있는 MAGA 운동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던 트럼프 주니어가 다음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는 지난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나는 공직에서 일할 스타일은 아니지만 제안을 받는다면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서민과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하는 공화당의 당내 기득권 세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부친에 이어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 속하는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공부하면서 저소득·저학력 백인들의 열패감도 직접 목격했다. 그 감성을 공유하는 ‘흙수저’ 출신 정치 신인 J D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적극 추천해 관철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2005년 모델 버네사 헤이든과 결혼해 장녀 카이 등 다섯 자녀를 뒀지만 2018년 이혼했다. 이후 폭스뉴스 앵커 출신 변호사 킴벌리 길포일(55)과 약혼해 현재까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길포일은 트럼프 주니어의 새어머니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보다 한 살이 많다. 길포일은 전(前) 배우자인 민주당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잡지 화보에 함께 등장하는 등 한때 ‘잉꼬 부부’로 유명했지만 2006년 결별했다.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인 길포일은 2020년 대선 캠프에서 법률 자문과 선거 자금 모금 등을 담당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전당대회 무대에 나와 발언하는 등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길포일과 함께 주목받는 인물이 차남 에릭과 2014년 결혼한 배우자 라라(42)다. CBS·폭스뉴스 프로듀서 출신인 라라는 지난 3월 대선 컨트롤타워인 공화당전국위원회(RNC) 공동 의장을 맡아 트럼프 캠프의 조직과 재정을 담당한 살림꾼이다. 7월 전당대회 때 트럼프 일가 중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 20분 넘게 연설했을 만큼 트럼프의 신임이 두텁다. 미국 언론에선 “트럼프 1기 때 장녀 이방카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플로리다가 지역구인 마코 루비오 상원 의원이 국무장관에 임명되면 라라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장녀 이방카 부부가 백악관 의사 결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면, 2기에서는 주니어·길포일, 에릭·라라 등 트럼프의 아들들과 그 약혼자·배우자가 전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