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일론 머스크(53)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신설 정부 조직인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 수장으로 발탁했다.
정부효율부는 연방 정부의 불필요한 지출·예산을 줄이고 공무원 숫자를 감축하는 역할을 주도하는 기관으로 트럼프 2기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부 조직이다. 이름은 부(部)이지만 국무부·재무부 등 일반 정부 부처와는 다른 형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조직을 세계 1위 억만장자 기업인이 맡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했다 자신을 지지하며 중도 하차한 인도계 기업가 비벡 라마스와미(39)도 머스크와 함께 정부효율부의 공동 수장으로 발표했다.
이날 두 사람의 구체적인 직책은 소개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들을 인선하며 낸 성명에서 “훌륭한 이 두 미국인(머스크·라마스와미)은 함께 나의 행정부를 위해 정부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고, 낭비되는 지출을 삭감하고, 연방 기관을 재건하기 위한 길을 닦을 것”이라며 “이는 세이브 아메리카(Save America) 운동의 핵심”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트럼프 2기 첫 국방 장관에 텔레비전 진행자이자 작가인 피트 헤그세스(44·예비군 소령)를 지명했다.장성 등 군 경험이 풍부한 60대 이상 인사들이 주로 발탁돼온 국방 장관직에 40대 영관급 장교가 깜짝 발탁돼 군(軍) 통수권자인 대통령 바로 아래서 미군을 지휘하는 실무 총책임자가 된 것이다.
헤그세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 유고 시 직을 승계할 정권 이인자 J D 밴스(40) 부통령 당선인, 전날 인선이 확정된 마이크 왈츠(50) 국가안보 보좌관 내정자와 함께 2000년대 미국의 중동 전쟁에 참전한 ‘영 베테랑(Young Veteran·젊은 참전 용사)’들이 전면에서 트럼프 2기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이끌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헤그세스 지명 사실을 알리며 “피트는 군대와 국가를 위한 전사(戰士)로 평생을 보냈고 미국 우선주의에 진심인 사람”이라며 “강인하고 똑똑한 그가 키를 잡고 있는 한 우리 군대는 다시 위대해지고, 미국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무 장관과 함께 미국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면서, 동맹에 대한 군사 지원과 적성국과의 교전 등 군사 분야를 총괄하는 국방 장관은 그동안 군에서 경험이 풍부한 예비역 장성 출신들이 많이 발탁돼왔다. 헤그세스보다 스물일곱 살이나 나이가 많은 로이드 오스틴 현 국방 장관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중부사령관을 지낸 장성 출신이다. 2017년 트럼프 1기에서 국방 장관을 지낸 제임스 매티스(74)도 전쟁 경험이 풍부한 강골 해병대 장성 출신이다.
이런 자리에 예비군 영관급 경력이 전부인 40대 방송 진행자를 발탁한 배경에 대해 트럼프가 동맹과의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고 국익 최우선 정책을 밀어붙일 적임자로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가 다른 외교·안보 고위직에 지명했던 인물들과 달리, TV 출연자이자 군인 출신인 헤그세스는 비(非)개입주의적 ‘미국 우선주의’ 외교 정책을 지지하는 인물”이라며 “놀라운 선택”이라고 했다.
헤그세스는 미네소타주(州) 포리스트 레이크 출신으로, 2003년 프린스턴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미 육군 방위군에 보병 장교로 임관했다. 관타나모 해군 기지를 거쳐 2006년 이라크에 파병돼 보병 장교로 복무했고, 2012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반란 대응 센터 교관으로 일했다. 이 같은 공로로 무공훈장인 동성 훈장을 두 차례 받았다. 이후 2012년 미네소타에서 연방 상원 의원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2014년부터 보수 성향인 폭스뉴스 방송의 진행자로도 8년째 일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트럼프와 가까워졌고, 1기 때는 보훈부 장관 후보로도 이름이 거론됐다.
이번 인선으로 2000년대 미국이 수행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참전 군인들이 트럼프 2기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에 부상하는 모습이다. 전날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 선임된 마이크 왈츠 하원 의원은 육군 특수부대 ‘그린베레’ 출신이자 육군과 주방위군에서 27년을 복무한 예비역 대령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아프리카 등에서 복무했다. 중서부 빈곤층의 ‘흙수저’ 경력을 앞세워 부통령에 당선된 J D 밴스 당선인 역시 고교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에서 복무했다.
이들이 참전한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잊힌 전쟁’이라 불리는 6·25 전쟁, 미군이 참담하게 패배한 베트남전과 달리 미군이 개전 초기부터 압도적 화력을 내세워 강군(强軍)의 위용을 전 세계에 과시했던 전쟁이다. 특히 이 중동 전쟁의 계기가 됐던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이들은 모두 20대 초·중반의 혈기왕성한 나이였다. 당시 9·11 테러가 발생한 뒤 애국심으로 자원 입대자가 폭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장 경험을 통해 ‘힘에 의한 평화’ ‘강한 미국’의 중요성을 절감한 이들이 미국 우선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지에 동맹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트럼프는 유세 때마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취지로 얘기해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헤그세스는 트럼프의 첫 임기 동안 트럼프를 헌신적으로 지지했고, 북한 김정은과의 교류, 해외 주둔 미군 철수를 지지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며 “이번 선택은 전통적인 국방 장관의 전형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헤그세스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5월 자신이 진행자인 폭스뉴스 방송에서 “NBA 농구를 좋아하고, 서양 대중문화를 좋아하는 김정은이 온종일 자기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정상화를 원할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가 원하는 걸 주자”며 옹호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버락 오바마·조 바이든 등 민주당 정부 내에서 활성화된 미군 내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프로그램도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보수 진영에선 군대가 성소수자 같은 ‘문화 전쟁’에 빠져드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큰데 트럼프는 선거 때 “고위직을 줄이고, 트랜스젠더·여군(女軍)을 더욱 포용하는 군대를 만들기 위한 바이든의 노력을 철회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미국의 대내외 전략을 위한 정보 수집을 총괄할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자신의 측근이자 3선 하원의원 출신인 존 랫클리프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발탁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법률 고문에 윌리엄 조셉 맥긴리 변호사, 중동 특사에 ‘골프 친구’이자 유대계 부동산 사업가인 스티븐 위트코프를 각각 지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