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복귀로 미 재계 리더들 역시 긴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경영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롤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대통령을 잘 구슬려 감세(減稅), 관세 부과 축소 같은 소원을 수리케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쿡은 최근에도 트럼프에 전화를 걸어 유럽연합(EU)이 부과한 천문학적 벌금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는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모두가 쿡처럼 될 수는 없지만 비즈니스 리더가 트럼프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관한 모범을 제시한다”고 했다.
쿡은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당신과 당신의 행정부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썼다. 전임자인 스티브 잡스에 비해 대외 행보를 꺼리는 쿡이지만 트럼프에게만큼은 전화를 걸거나 만남을 요청해 스킨십을 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고 한다. 이는 대기업들이 실력자에 줄을 댈 때 전관 출신 대관 임원이나 로비스트를 통하는 워싱턴의 문법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2019년 쿡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전화하지 않는데 그는 나에게 전화하기 때문에 훌륭한 경영자”라며 만족감을 드러낸 바 있다. 대선 직전인 지난달 17일에도 “쿡이 두세 시간 전에 전화를 걸어와 EU가 부과한 수십억 달러 벌금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다”며 ‘정책 민원’을 한 사실을 공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올해 3월 애플이 음악 스트리밍 관련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18억 유로(약 2조6300억원)를 부과했고, 애플은 8년에 걸친 EU와의 세금 체납 소송에서도 최종 패배해 130억 유로의 과징금을 내게 됐다. 트럼프는 “그들이 우리 회사를 이용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쿡은 과거 트럼프를 구슬려 여러 차례 승리의 경험을 맛본 적이 있다. 2017년 “애플이 2500억 달러(약 350조원)에 이르는 해외 현금을 낮은 세율로 송환할 수 있다면 미국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말해 당시 민주당이 반대하던 트럼프의 감세 계획 발표를 촉진했다. 2019년 트럼프가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10% 관세 부과를 추진하자 중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기기를 생산하는 쿡이 로비에 나섰다. 관세가 어떻게 아이폰 가격 인상을 가져오고, 당시 경쟁이 치열했던 삼성전자 같은 외국 라이벌을 도울 수 있는지 설명했는데 트럼프는 며칠 뒤 관세 계획을 축소했고 “아이폰을 포함한 다양한 전자제품에 예외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쿡도 컴퓨터 생산 시설을 텍사스주(州) 오스틴에서 중국으로 이전시키기로 한 이전 결정을 번복하며 트럼프에 정치적 승리를 안겨다 줬다.
WSJ는 “쿡이 애플과 트럼프의 의제 중 서로 관심이 공통되는 분야에 집중해 관계를 구축했다”며 “이런 전략은 회의가 엉뚱한 길로 흘러가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다만 애플이나 쿡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기업이 드물기 때문에 직접 수화기를 드는 쿡의 전략을 누구나 구사하기에는 만만치 않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쿡은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장녀 이방카 트럼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 부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 대통령에 접근했다. WSJ에 따르면 일부 경영진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비벡 라마스와미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에 직접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인 머스크가 최측근으로 부상하면서 기업인 출신인 그가 트럼프 ‘이너 서클’에 가까워 질 수 있는 새로운 채널로 주목받는 것이다.
다만 트럼프와 일대일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굴지의 택배 회사인 페덱스의 프레드 스미스 회장은 지난달 한 행사에서 트럼프와 만나 세계화와 관세에 대해 ‘매우 격렬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자유무역을 옹호해 온 그는 언론에 “트럼프는 매우 친절하고 실제로 만나면 좋은 동료지만, ‘수입은 적자이자 손실이고 수출은 이익’이라 말하는 그를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