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AP 연합뉴스

개빈 뉴섬(57) 캘리포니아주(州) 주지사는 25일 “트럼프 2기 정부가 연방 하원의 전기차 세액 공제를 없애면 캘리포니아는 과거에 시행했던 친(親)환경차 환급 제도를 재도입할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부정적인 입장인데, 이를 폐지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선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이다. 뉴섬은 대선 패배는 물론 상·하원도 다 내준 민주당 진영의 구심점이 될 만한 몇 안 되는 인물로, 현 시점에선 차기 민주당 대선 주자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다.

뉴섬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친환경 교통의 미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차량의 운전을 더 저렴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는 2022년 의회를 통과한 IRA에 근거해 미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5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IRA를 자신의 치적으로 홍보해 왔는데, 최근 로이터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정권 인수팀이 바이든의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자신이 보도를 확인도 하기 전에 뉴섬이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다.

보수 진영의 상당수가 기후 위기 서사를 거부하면서 전기차 보급 확대에 관한 찬반 여부, 이른바 ‘전기차냐 내연기관이냐’하는 문제는 미국 내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사안이 되고 있다. 진보 성향이 짙은 캘리포니아는 전기차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데, 지난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무(無)공해 자동차 구매자를 대상으로 환급 제도를 시행해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를 지원했다. 또 2035년까지 새로 판매되는 승용차와 경트럭을 무공해 차량으로 할 것을 의무화했다. 인구가 약 4000만명인 캘리포니아가 미국 내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이기 때문에 다른 주들도 이 기준을 참고하고 있는데, 트럼프는 1기 때 이 규정을 종료한다 선언했지만 뒤이어 들어선 바이든 정부가 권한을 회복시켰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로이터·뉴스1

뉴섬은 트럼프 당선 직후인 지난 9일에도 트럼프 2기로부터 임신 중절 권리, 기후 변화 같은 주의 진보적 정책을 보호하겠다며 연말에 주의원들을 특별 세션에 소집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가 공격을 받고 있으며, 가만히 앉아 있지 않을 것”이라며 역시 진보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일리노이·뉴욕·메사추세츠 등과의 연대도 시사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민주당 우세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캘리포니아가 진보 정치의 장기 집권에 의해 망가졌다는 네러티브를 구사해왔다. 반대로 이는 뉴섬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와 맞서며 체급을 키우고 리더십이 진공 상태인 민주당의 차기 주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기회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는 트럼프 1기 때도 연방 정부를 상대로 120회 이상의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뉴섬은 1967년생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유복한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산타클라라대에 진학해 야구 선수 장학금을 받았지만 1학년 때 팔꿈치 수술을 받아 투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와인가게, 레스토랑, 의류 매장 등을 운영하며 사업적 성공을 이룬 뉴섬은 1997년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당시 캘리포니아 정가의 거물이었던 윌리 브라운의 도움을 받았는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정치적 남매’라 불리기도 했다. 뉴섬은 2018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됐고 2022년 59%의 득표율로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말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을 거침없이 밝히고 있어 차기 대선을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 나왔다. 트럼프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의 약혼자 킴벌리 길포일이 뉴섬의 전 부인으로, 한 때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의 ‘잉꼬부부’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