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2일 트럼프 2기 재무장관으로 월스트리트에서 널리 알려진 헤지펀드 창업ㆍ매니저인 스콧 베센트(Bessentㆍ62)를 지명했다.

이에 앞서, 19일에는 무역대표부 대표와 함께 미국의 무역 정책을 “직접적으로 책임질” 상무장관에 월스트리트의 금융서비스 회사 CEO인 하워드 러트닉(Lutnickㆍ63)을 지명했다. 러트닉은 트럼프 캠페인에 근 1억 달러를 기부했으며, 트럼프와는 30년 지기 비즈니스 친구다. 현재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으로서, 차기 행정부에서 장관과 백악관 주요 직책을 맡을 인물들을 추천ㆍ검증하는 절차를 주도하고 있다.

미 재무장관은 연방정부의 모든 부처에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자리다. 재력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 한 번쯤은 꿈꿔보는 공직이다. 재무장관이 되면 새로 발행되는 달러화에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다. 최근에는 스티븐 므누신 골드먼삭스 임원 출신(2017~2021 장관 재직), 로버트 루빈 전 골드먼삭스 공동회장(1995~1999), 헨리 폴슨 골드먼삭스 회장(2006~2009) 등이 역임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에 지명된 스콧 베센트

예일대 출신인 베센트는 유세 기간에도 트럼프가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 중 한 명” “모든 이의 존경을 받는다” “잘 생기기까지 했다”고 측근들에게 소개하며 재무장관으로 마음에 뒀던 인물이다. 공개적인 동성애자(gay)로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재무장관에 지명됐다.

그러나 순조로울 법했던 그의 재무장관 지명 과정은 권력 다툼과 음모가 종종 벌어지는 트럼프 이너서클에서도 가장 추악한 ‘칼싸움(knife fight)’이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과 폭스뉴스가 최근 보도했다.

◇재무장관 발표 2주 앞두고 ‘칼싸움’ 시작

베센트의 재무장관 지명을 막은 것은 바로 하워드 러트닉 정권인수위 공동위원장이었다. 러트닉 자신이 재무장관 직을 노렸기 때문이었다. 러트닉은 9ㆍ11테러에서 남동생과 직원 대부분인 658명을 잃고도 다시 기업을 일으킨 전형적인 월스트리트의 인파이터였다. 경쟁자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지독하게 대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다시 공화당의 대선 후보 지명을 받아내고 정적(政敵)을 조롱하고 집요하게 공격해 결국 승리를 쟁취한 트럼프와도 비슷한 점이 있었다.

상무장관에 지명된 하워드 러트닉 정권인수위원회 공동 위원장. 10월27일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에서 열변을 토하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미 대선이 끝나고 11월 10일쯤 트럼프의 최고위 이너서클에서는 수지 와일스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 J D 밴스 부통령 당선인,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한 래리 커들로 등의 지지를 받은 베센트가 재무장관으로 굳혀졌다. 러트닉은 동요하지 않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의심과 사적 원한, 마지막 변심(變心)이 난무한 ‘왕좌의 게임’이 시작됐다.

베센트에 대한 공격의 초점은 그가 오랫동안 민주당 정치인들을 지지했고, 트럼프 진영이 극좌 혐오 인물로 보는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 펀드에서 임원으로 일했고, 이후 창업한 헤지펀드의 실적이 사실은 별 볼 일 없다는 것이었다. 또 베센트가 트럼프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이 주창하는 보호무역 정책을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퍼뜨렸다.

베센트가 2000년 미 대선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를 위해 자신의 집에서 모금 행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러트닉의 과거도 결코 ‘공화당’이 아니었다. 그는 2015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위해 1인당 2700 달러(약 377만원)짜리 모금 만찬을 혼자서 주최했고, 민주당에 거액을 기부했다. 카멀라 해리스가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했을 때에도 돈을 댔다.

베센트가 소로스 펀드에서 2001~2005년 최고투자임원(CIO)로 일했고, 1992년에는 29세의 나이에 소로스와 함께 영국 파운드화의 폭락을 예측하는 100억 달러짜리 베팅을 해서 무려 10억 달러를 번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는 소로스가 지금처럼 미국 보수세력의 증오 대상이 아니었다. 또 트럼프 자신이 ‘정치는 정치고, 돈 버는 것은 별개’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러트닉은 또 베센트의 헤지펀드사인 ‘키 스퀘어(Key Square)’의 실적도 좋았던 연도의 것들은 빼고, 부실 기업을 알짜 기업으로 전환시켜 되판 것은 빼며 왜곡된 정보를 트럼프에게 올렸다.

한편, 베센트 재무장관 지명자는 대선 전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속내는 자유무역 지지자다. 나중에 낮추기 위해서 지금은 (관세 주장과 긴장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금융인들은 대개 시장경제에 기초한 무역에서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센트는 이 인터뷰로 트럼프의 보호주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몰렸고, 곧 폭스뉴스 웹사이트 기고 칼럼에서 “관세를 올리면 연방 정부의 재원이 늘어나고, 기업들의 생산시설 미국 이전(移轉)을 부추기고, 전략적 경쟁국[중국]의 산업시설에 미국이 의존하는 것도 줄일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러트닉의 우방 머스크와 케네디 주니어, 일제히 ‘러트닉 재무’ 트윗

러트닉의 우방인 일론 머스크와 보건복지부 장관에 지명된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17일 동시에 소셜미디어 X에 러트위크를 재무장관으로 밀었다. 머스크는 아예 “내 의견을 말하자면, 베센트는 하던 대로의 선택이고, 러트닉은 진짜 변화를 일으킨다. 하던 대로 하면 미국은 망한다. 우리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썼다. 케네디 주니어는 “비트코인으로선 하워드 러트닉보다 더 강력한 지지인물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썼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우방인 러트닉이 상무장관으로 지명되기 이틀 전인 11월17일, 그를 "진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재무장관으로 적극 지지하는 트윗을 게재했다. 그의 팔로워는 2억 명에 달한다.

베센트도 반격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주요 TV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과 MAGA 프로그램을 적극 옹호하며 자신의 재무장관 직 지명을 굳히려고 했다.

그러나 러트닉 일당의 계속된 공격에, 트럼프도 결국 ‘베센트 카드’를 재고하게 됐고 헤지펀드인 아폴로 펀드의 CEO와 경제학자 케빈 와시를 추가로 면접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MAGA 경제학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와시는 재무장관 직보다는 1년 뒤에 후임 인선이 있을 연방준비은행이사회(FRB) 의장 자리를 원했다.

사실 ‘와시 카드’는 러트닉이 궁리한 차선책이었다. 러트닉은 와시를 일단 재무장관에 앉힌 뒤에, 1년 뒤에 와시가 FRB 의장으로 옮겨가면 자신이 다시 재무장관 직을 노려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두 사람을 추가로 면접한 결과 다시 베센트로 유턴(U-turn)했고 19일 러트닉을 상무장관으로 발표한 데 이어 22일 베센트를 재무장관으로 발표했다.

◇베센트, 러트닉과 통화 중 상욕 던져

베센트가 재무장관 지명되기 직전에, 러트닉은 베센트에게 전화를 했다. 둘 사이의 반목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러트닉은 “우리 둘 다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게 서로 다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센트는 “나는 트럼프 대의(大義)에 전념하고 있지만, 당신이 내가 재무장관이 되지 못하게 한 짓들을 알고 있다”고 응수했다. 그러고 한 순간 러트닉에게 “꺼져(go fu_ _ yourself)”라고 말했다고 한다.

폭스뉴스는 트럼프의 고위 측근을 인용해 “러트닉이 재무장관 인선 과정에서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며 “아기처럼 굴었다”고 전했다. WSJ는 “트럼프 고위 측근들은 두 사람이 과연 백악관이나 정부 간 주요 정책 회의에서 한 테이블에 앉을 수나 있을까 우려한다”고 전했다.

이제 베센트가 상원의 재무장관 인준을 받고 나면, 러트닉에게 어떤 ‘긴 칼’을 겨눌지도 관건이다. 폭스뉴스는 러트닉이 시작한 두 사람의 반목이 트럼프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다며, “트럼프는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가장 중요시하며, 러트닉의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은 의심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