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29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만찬을 갖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X(옛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전쟁’이 트럼프 2기 출범 전부터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30일 신흥국들의 경제 협의체인 ‘브릭스(BRICS)’를 겨냥해 달러 패권에 도전할 경우 관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의 3대 교역국인 멕시코·캐나다·중국을 상대로 취임 첫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 엄포를 놓은 지 닷새 만이다. 이런 가운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플로리다의 트럼프 자택을 전격 방문하며 자세를 낮췄고,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도 트럼프와 긴급 통화로 달래기에 나섰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해가려는 각국의 숨가쁜 외교전이 일찌감치 불붙는 양상이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브릭스 국가들이 달러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미국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새로운 브릭스의 통화를 만들든 기존의 통화를 지지하든, 강력한 달러에 도전하려 들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했다. 브릭스는 2009년 결성 뒤 한동안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5국 체제로 이어지다 올해 이란·이집트·아랍에미리트·에티오피아·사우디아라비아가 신규 가입국으로 합류하며 덩치를 두 배로 키웠고 최근엔 튀르키예까지 가입을 신청했다.

그래픽=백형선

브릭스는 역내 통화 활용을 늘리는 식으로 달러화 사용 비중을 낮추고, 국가 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결제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며 달러 패권에 도전해왔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국과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한다고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경고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는 “브릭스가 국제 교역에서 달러의 대안을 찾을 가능성은 없으며 그런 시도를 하는 어떤 나라도 미국과 결별하는 것”이라며 “(달러 패권을 지지하지 않으면) 다른 ‘빨대(sucker)’를 찾으면 된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관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 “사전에서 가장 아름답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라며 재집권 시 관세를 국정의 주요한 도구로 사용할 것임을 예고했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실행하며 각국의 허를 찌르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달 25일 이웃 국가인 캐나다·멕시코를 상대로 “불법 이민자와 마약 문제를 해결하라”며 취임 당일인 내년 1월 20일 관세 25%를 부과하겠다는 ‘선전 포고’를 했다. 이에 캐나다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트뤼도는 관세 부과 발언이 나온 당일 늦은 시간 트럼프에 전화를 걸어 캐나다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가는 불법 이민자가 소수에 불과하고, 마약 밀수도 멕시코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했다. 이어 지난달 29일 국경 문제를 총괄하는 도미닉 르블랑 공공안전부 장관을 대동하고 트럼프의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해 트럼프와 약 3시간 동안 만찬을 했다. 트뤼도는 하루 뒤 트럼프와 찍은 사진을 X에 올리며 “지난밤 저녁 식사에 감사하고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고대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의 결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펜타닐, 마약 위기, 미국 근로자를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 공정한 무역, 미국의 대(對)캐나다 무역 적자 같이 중요한 의제들을 논의했다”며 “매우 생산적인 회동이었고 트뤼도가 (마약류에 의한) 끔찍한 가정 파괴를 끝내는 데 우리와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진보 계열의 자유당 출신인 트뤼도는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성향 서방 지도자였다. 올해 1월에는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퇴보고, 그가 당선되면 캐나다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랬던 그가 트럼프 당선 이후 가장 먼저 대면(對面) 회담을 가진 G7(7국) 정상이 될 정도로 180도 변한 것은 정치적 위기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집권 9년 차를 맞아 고물가, 경기 둔화 등으로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고 있는 트뤼도는 양국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정치적 명운(命運)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와 더불어 ‘관세 폭탄’ 대상으로 지목된 멕시코 역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갖고 멕시코 국경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또 “중국 자동차 회사(전기차 제조사 BYD)로부터 멕시코에 공장을 설치하겠다는 확실한 프로젝트 제안을 확인한 적이 없다”며 중국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취했다. 셰인바움은 자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관세 부과 방침이 발표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가 이뤄진다면 멕시코도 관세를 올릴 것”이라며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결국 긴급 통화를 통해 ‘트럼프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이 밖에 유럽에서는 ‘미국산 제품 구매 리스트를 만들어 트럼프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현실론이 대두되는 등 각국이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30일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한 호텔을 나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