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아들 헌터 바이든. /로이터·뉴스1

조 바이든 대통령은 1일 불법 총기 소지와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차남 헌터 바이든(54)을 사면했다. 임기를 한 달 반 남겨두고 있는 바이든은 이날 아프리카 앙골라 방문을 앞두고 발표한 성명에서 “연방 검사에 대한 정치적 압력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고, 아들이 불공정하게 기소됐다” “미국인들이 아버지이자 대통령인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며 사면 방침을 밝혔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는 것이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이라고 했다.

바이든은 이 “헌터의 사건을 살펴본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헌터가 내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소됐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며 “끊임없는 공격과 선별적인 기소로 지난 5년 반 동안 (약물 중독에서 회복해) 평정심을 유지한 헌터를 무너뜨리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했다. 불법 총기 소지 혐의에 대해선 “범죄에 사용하거나 여러 번 밀매로 구매한 것 같은 가중 요인 없이 총기 구매 양식을 작성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범죄 재판에 회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또 탈세 혐의에 대해 “심각한 중독으로 인해 세금을 늦게 납부했지만 이후 이자와 벌금을 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비(非)범죄로 처리된다”고 했다. 바이든은 추수감사절인 지난달 28일 매사추세츠주(州) 낸터킷에서 가족 모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사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헌터의 변호인들도 30일 52페이지 짜리 성명을 통해 헌터에 대한 ‘정치적 기소’를 비판했다.

헌터는 2018년 자신이 마약류 중독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권총을 구매·소지한 혐의로 지난해 기소돼 지난 6월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오는 4일 법원의 형량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헌터는 탈세 혐의로도 기소됐는데 지난 9월 공판에서 유죄를 인정하면서 배심원 평결 절차 없이 이달 중순 선고 공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바이든과 백악관은 그동안 아들의 감형이나 사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라는 답으로 일관해 왔다. 지난 6월 헌터가 총기 불법 소유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자 “사면은 물론 감형도 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바이든이 사실상의 레임덕에 접어들었지만, 이날 사면 결정은 기존 입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라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헌터는 첫 번째 배우자 고(故) 닐리아 바이든 여사 사이에서 나온 둘째 아들이다. 두 살 때인 1972년 크리스마스 쇼핑을 나갔다가 교통 사고를 당해 모친과 여동생을 잃는 비극을 겪었고 자신도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조지타운대, 예일대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해 기업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는데 워싱턴에서 영향력있는 정치인인 부친 때문에 정가에서 이해 충돌·특혜 논란이 일었다. 헌터는 미망인이 된 형수와의 불륜, 관계를 맺은 모 스트리퍼와의 혼외자(婚外子) 논란, 약물 중독 등 사생활로도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잦았다. 바이든의 ‘아픈 손가락’인 셈이다.

헌터는 1일 발표한 성명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 나와 가족을 수치스럽게 만든 실수를 인정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졌다”며 “오늘 받은 사면을 결코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내가 재건한 삶을 아프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데 헌신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