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 불법 총기 소지와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는 차남 헌터 바이든을 사면한 것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보다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시했다” “사법 제도가 공정하고 평등하다는 국민들의 믿음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1·6 의회 습격 사태 선동 전력을 부각하며 “민주주의의 위협”이라 공격해왔던터라 기존 입장을 뒤집고 아들을 사면한 게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바이든은 앙골라·카보 베르데 방문을 앞둔 1일 저녁 “미국인들이 아버지이자 대통령인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며 헌터에 대한 사면을 발표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2일 기자들과 만나 “헌터에 대한 기소는 정치적인 행위고 헌터는 ‘좌표 설정’을 당했다”라며 “무기화된 트럼프 정부로부터 아들을 보호하는 게 대통령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를 비롯한 바이든의) 정적들이 헌터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질 바이든 여사 역시 CNN에 “바이든의 사면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바이든 일가는 지난주 매사추세츠주(州) 낸터킷에서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냈는데, 여기서 헌터에 대한 사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이번 결정에 대해 “바이든의 사면권 남용으로 인해 우리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거의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됐다”고 했다.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 역시 폭스뉴스에서 “바이든이 의회 증언을 강요당할 수 있다”며 바이든의 사면 결정이 역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봤다. 하원 감독위원장으로 헌터가 과거 기업 로비스트로 활동하며 워싱턴 실력자인 부친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파헤쳐온 제임스 코머 하원의원은 “바이든은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그렉 랜드먼 하원의원이 “공직 사회를 믿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좌절”이라며 바이든의 결정을 에둘러 비판했다. 또 마이클 베넷 상원의원은 “바이든의 결정은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보다 개인적인 이익을 우선시한 것”이라며 “사법 제도가 모두에게 공정하고 평등할 것이란 미국인들의 믿음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인 제러드 폴리스 콜로라도 주지사도 “후대 대통령들이 남용할 수 있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했다. 1990~1997년 법무부의 사면 담당 변호사로 일했던 마가릿 러브는 언론에 “트럼프 조차 사면을 할 때는 사면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었다”며 “리처드 닉슨 때를 제외하면 사면 문서에서 이런 표현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 정가에선 이번 사면 결정이 임기를 마무리하는 바이든의 레거시에도 치명상을 입힐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바이든은 민주주의 강화를 시대적 목표로 규정하며 전 세계 민주 진영 국가들을 결집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출범시키는 등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해 왔다. 지난 7월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낙마하기 전까지도 경쟁자인 트럼프의 1·6 의회 선동 전력을 부각하며 “트럼프는 민주주의의 적(敵)이자 위협”이란 메시지를 발신해왔다. 하지만 임기를 한 달 반 남겨두고 정작 자신이 ‘아들을 위한 사면·감형은 없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으며 논란을 자초했다. 반세기 가까이 워싱턴에서 활동하며 부통령, 상원의원을 지냈고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불명예스런 퇴진을 앞두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