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 시각) 불법 총기 소지 및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차남 헌터 바이든을 사면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간 “사면하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퇴임을 한 달여 앞두고 뒤집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곧바로 “사법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최근 2기 행정부 내각을 꾸리면서, 사돈을 잇따라 고위직에 내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최근 장녀 이방카의 시부인 찰스 쿠슈너를 주프랑스 미국 대사로 지명한 데 이어, 차녀 티파니의 시부인 마사드 불로스를 아랍·중동 선임고문에 지명했다고 1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에 대해 현지에선 전현직 미국 대통령의 ‘네포티즘(nepotism·족벌주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네포티즘은 가족·친척에게 특혜·지위를 주는 것을 뜻하는 말로, 15~16세기 교황들이 자신의 사생아를 조카(라틴어로 nepos)로 위장시켜 특혜를 주던 것을 비판하는 데서 유래했다.
바이든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아들에 대한 기소가 정치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헌터는 내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표적이 됐다.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미국인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일각에서도 바이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헌터는 마약중독 사실을 숨기고 총기를 불법 구매한 혐의, 140만달러(약 20억원)의 탈세 혐의 등으로 배심원 유죄 평결을 받고 이달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지난 6월 바이든은 “나는 헌터를 사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백악관 대변인 역시 “우리의 답은 그대로다. (사면) 안 한다”고 했었다.
당장 자신에 대한 4건의 기소가 “바이든의 ‘정치적 보복 기소’”라고 주장해 왔던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조(바이든)가 헌터에게 내린 사면에 수년간 수감돼 있는 ‘J-6 인질’도 포함되느냐”고 했다. ‘J-6 인질’은 2021년 1월 6일 트럼프가 재임에 실패한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회 점거 폭동을 벌여 수감된 지지자들을 가리키는데, 트럼프가 헌터 사면에 빗대 이들을 사면해도 되느냐고 비꼰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역시 1기 재임 중이던 2020년 12월 퇴임을 한 달여 앞두고 사돈이었던 찰스 쿠슈너를 사면했다. 찰스 쿠슈너는 불법 선거 자금 기부 및 세금 회피 혐의 등으로 2005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미 전현직 대통령들의 사면권과 공직 임명권 남용을 미국의 강력한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미국은 철저한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 정부가 법안 발의권을 가진 것과 달리 입법권이 오로지 의회에만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의 헌법상 고유 권한인 사면권과 임명권 역시 더 폭넓게 존중된다는 것이다. 한국 대통령은 헌법 79조에 의해 ‘특별사면’ 권한을 갖는다. 사면 대상을 법으로 제한받지는 않지만, 직계혈족을 직접 사면한 사례는 없다.
다만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도 권한이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동생 로버트 F 케네디를 법무장관에 임명해 족벌주의 비판이 일자, 1967년 미 의회는 직계 가족을 자신의 감독하에 있는 직책에 임명할 수 없도록 하는 ‘반족벌주의법’을 제정했다. 트럼프는 재임 당시 장녀 이방카 부부를 의회 인준이 필요 없는 백악관 고문직에 임명하는 식으로 이 법안을 피해가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이던 2001년 1월 20일 마약 유통 혐의로 유죄를 받은 이복 동생 로저 클린턴을 사면했다가, 사면권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아 의회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권한 남용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치 양극화와 극심한 진영 논리에 의해 이 같은 비판이 묻히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