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G20(20국) 정상회의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의 이웃 나라인 캐나다·멕시코를 상대로 취임 첫날 관세를 부과한다고 엄포를 놓은 가운데, 한때 서로를 ‘아미고(amigo·’친구’를 뜻하는 스페인어)’라 불렀던 두 나라 정상이 트럼프를 달래려 서로를 흉보다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10월 멕시코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해 70%가 넘는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는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집권 9년 차를 맞아 고(高)물가·경기 침체 등으로 실각 위기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서로 다른 정치적 입지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갈등이 안 그래도 불안한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트럼프는 1기 재임 중 미국의 3대(大) 교역국인 캐나다·멕시코와 체결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USMCA로 대체해 2020년 7월 1일 공식 발효시켰다. 그럼에도 ‘미국이 여전히 무역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상당했는데, 완성차 업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멕시코에 잇따라 생산시설을 지어 미국 시장에 우회 진출을 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선 기간 내내 재집권 시 USMCA를 손볼 것이란 메시지를 발신해 왔다. 지난달 26일 트뤼도가 먼저 이런 멕시코의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USMCA는 3국 경제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절대적으로 뛰어난 무역 협정”이라면서도 “중국의 대(對)멕시코 투자에 대한 실질적이고 진정한 우려가 제기됐다”고 했다.

셰인바움은 이에 대해 다음날인 27일 “중국 제품이 멕시코로 들어와 미국으로 수출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며 “(미국·캐나다 양국에) 멕시코가 중국 상품의 환적 허브라는 비난이 ‘거짓’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또 “북미에서 이 협정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캐나다 총리와도 얘기했다”며 지난 1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G20(20국) 정상회의 기간 트뤼도와 만나 대화한 것을 상기시켰다. 셰인바움은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차량에는 평균적으로 중국산 부품이 7%밖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미국에서는 9%에 달한다” “대통령 임기 6년 동안 목표는 중국 수출에 대한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트럼프와 가진 통화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중국과의 거리두기’까지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오른쪽)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달 29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만나 만찬을 같이했다. /X(옛 트위터)

트뤼도는 지난 29일 예고 없이 트럼프의 자택인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를 방문해 트럼프를 비롯한 내각 지명자들과 세 시간 동안 만찬을 가졌다. 과거 다자(多者) 회의에서 트럼프를 뒷담화하는 등 각을 세웠던 모습과 달리 고개를 바짝 숙인 것이다. 특히 이 자리에서 ‘캐나다·미국 간 국경 상황과 미국·멕시코 간 국경 상황은 비교할 수 없다’ ‘마약과 이주민 유입에 관해 캐나다·멕시코를 동일 범주에 묶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입장을 트럼프에 주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만찬장에 배석한 커스틴 힐먼 주미 캐나다 대사는 AP에 “미국에서 압수된 펜타닐의 99.8%가 멕시코에서 생산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셰인바움은 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트뤼도의 ‘모욕적인 언급’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나는 교역 파트너에 대해 존중하며 도발에 빠지지 않겠다”면서도 “캐나다는 스스로 마약 펜타닐 소비에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캐나다에서는 내년에 선거가 있는데 항상 지적하고 싶은 건 멕시코를 선거운동의 일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2015년 총리에 오른 트뤼도는 3연임을 하며 10년 가까이 정부 수반으로 캐나다를 이끌고 있지만, 각종 구설 및 스캔들에 휘말렸고 최근에는 고물가·주택난으로 지지율이 추락하며 야당의 사퇴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이번에는 셰인바움이 국정 운영 동력을 상실한 트뤼도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