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한국·미국·일본 3국 간 협력도 치명상을 입게 됐다.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 중국 패권주의 등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협력은 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이를 추동한 바이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에 이어 윤 대통령까지 무대에서 내려오며 존폐 기로에 놓였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 정상은 지난해 8월 3국 협력의 큰 틀을 명시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 이를 바탕으로 한 공동성명인 ‘캠프 데이비드 정신’, 위기 상황에서 3국이 공조하기 위한 ‘한·미·일 간 협의에 대한 공약’ 등 3가지 문서를 채택했다. “한·미·일이 하나가 될 때 더 강하다”며 3자 공조의 제도화에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추구, 납북자·억류자·미송환 국군포로 문제 해결,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인공지능(AI)·우주·사이버 협력, 해상 훈련,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중국 견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추구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했다.
그런데 지난 7월 ‘큰형’ 격인 바이든이 고령 논란 속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낙마한 데 이어 8월에는 10%대 지지율로 고전해 온 기시다가 자민당 총재에 불출마하겠다며 퇴임을 선언했다. 이어 취임 초부터 한일 관계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며 한·미·일 협력을 추동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여파 속 해를 넘기지 못하고 국회에서 탄핵됐다. 캠프 데이비드서 약속했던 주요 사업은 이미 논의가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지난 12일 국무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1.5트랙 대화인 ‘한·미·일 여성 경제 역량 강화 콘퍼런스’는 “예측하지 못한 상황”(국무부) 때문에 개최 직전 연기됐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임기 중 마지막 동북아 방문에서 방한(訪韓)을 취소하고 일본만 찾았다.
우리 정부가 물밑에서 추진해 온 한·미·일 3국 협력사무국의 서울 설치도 당분간은 어렵게 됐다. 3국은 지난해 11월 페루에서 만나 사무국 설치에 합의했지만, 한국이 커다란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3국 협력의 주창자이자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을 놓고 ‘노벨평화상감’이라 말했던 커트 캠벨 국무부 부장관도 “심한 오판을 했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캠프 데이비드’ 합의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밝힌 게 없지만, 가치보다 손익 관점에 기반한 동맹관을 지녔고 다자(多者)가 아닌 양자(兩者)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평가 받는다. 한·미·일을 비롯해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 소(小)다자 협의체들 간 유기적인 연계를 추구한 바이든과 차이가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대중 견제 차원에서 한·미·일 협력 틀을 계속 활용할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워싱턴 조야에선 3국 관계가 ‘암흑기’에 들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신들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으로 떠오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외교·안보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대표가 “북한과의 교류, 미국으로부터의 독립, 중국과의 균형, 일본과의 강경 노선을 추구할 것”이라며 “한국의 외교 정책에 기존과 다른 노선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다만 WSJ은 그가 선거법 위반, 위증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병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1일 “이 대표가 북·러에 대해 더 유화적인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전문가를 인용해 한·미·일 협력이 후퇴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민주당이 지난 5일 국회에 보고한 탄핵소추안(정족수 미달로 폐기)에는 “북한·중국·러시아를 적대시한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 정책”이 탄핵 사유 중 하나로 명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