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우주기업 스페이스X는 단 22시간 내에 3대의 팰컨(Falcon) 9 로켓을 우주로 쏴 올렸다. 모두 성공이었다. 첫번째는 스페이스X의 고속 인터넷서비스 군집(群集) 위성인 스타링크로, 모두 54개 위성을 고도 550~570㎞의 우주에 안착시켰다. 두번째는 미 우주군의 강력한 차세대 GPS 위성(GPS Ⅲ)인 SV-07를 중궤도(MEO)인 고도 2만200㎞에 올리는 프로그램이었다.
GPS Ⅲ는 기존 GPS 위성보다 정확도와 신호가 훨씬 강력한 위성으로, 미국은 모두 10개를 쏴 올릴 예정이다. 그러나 특히 이날 발사는 적의 위성 파괴에 대비해 후속 GPS Ⅲ 위성을 얼마나 신속하게 올릴 수 있느냐를 테스트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미 국방부는 애초 SV-07 위성을 발사하려던 ULA(보잉과 록히드마틴 합작 기업)가 끝내 준비가 되지 않자 스페이스X로 발사 기업을 바꿨고, 스페이스X는 4개월만에 3.9t 중량에 매우 정교한 이 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전 같으면, 이런 중량급의 첨단 위성은 제작이 완료되고도, 발사까지 2년이 걸렸다. 세번째로 쏜 팰컨 9은 화물우주선 드래곤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올해 스페이스X 한 기업이 발사한 로켓 회수는 131회로, 전세계 로켓 발사(256건)의 절반을 넘는다. 2위인 중국이 발사한 로켓 회수는 모두 30회 정도.
지난 10월 13일 머스크의 수퍼헤비 1단계 로켓이 시험 발사를 마치고 지상으로 귀환할 때 메카질라(Mechazilla) 로켓 회수 시스템의 로봇팔은 길이 70m에 달하는 이 로켓을 마치 젓가락을 사용하듯이 정확하게 잡아냈고, 세계는 이 놀라운 기술에 열광했다.
전세계 우주시장을 석권한 스페이스X의 이러한 화려한 업적 뒤에는, 바로 스페이스X의 사장이자 사업과 개발을 총괄하는 최고운영임원(COO) 그윈 쇼트웰(Gwynn Shotwellㆍ61)이 있다.
◇NASA “우리는 머스크가 아니라, 그윈 쇼트웰과 일한다”
2022년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미 항공우주국(NASA)의 빌 넬슨 국장은 스페이스X의 NASA 관련 개발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까봐 안달이 났다. NASA의 달ㆍ화성 탐사 프로그램인 아르테미스의 성공은 스타십과 같은 강력한 로켓과 초대형 우주선을 개발하는 스페이스X의 일정과 맞물려 있다.
결국 그해 말, 넬슨은 쇼트웰을 만났다. “이봐요, 일론이 트위터에 정신 뺏기는 바람에, 스페이스X가 영향을 받지는 않겠죠?” 쇼트웰은 “안심하세요. 전혀 걱정하실 것 없어요”라고 답했다.
넬슨 국장은 그 뒤 NBC 방송 인터뷰에서 “이 말을 듣고, 환하게 웃으며 그를 껴안았어요. 스페이스X를 움직이는 건 이 사람이거든요!”라고 말했다. NASA 수뇌부는 머스크 관련 리스크를 질문 받으면, “우리는 머스크가 아니라, 그윈(쇼트웰)과 일한다”고 답한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의 꿈을 꾼다면, 이 꿈을 조용하게 하나씩 이뤄내는 이는 바로 쇼트웰이다. 성격이 급하고 편집광적인 머스크를 조용히 조율하는 사람도 쇼트웰이다. 지난 11일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는 스페이스X의 ‘로켓 맘(Rocket Mom)’ 쇼트웰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위에 선정했다. 쇼트웰 자신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매우 피한다.
쇼트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17일 워싱턴 DC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해 “성공하면, ‘해냈다’는 것 외에 얻을 게 없다. 실패는 하면 할수록, 우리 시스템과 한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풍부하게 누릴 수 있었다”며 “정부도 운영 실패가 아닌, 개발 실패에서는 세금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쇼트웰은 아직 스페이스X가 이렇다 할 로켓도 못 만들고 실패를 거듭하던 시절에, 머스크에 채용된 초기 멤버다. 머스크가 한 최고의 채용 성공 사례로 꼽힌다.
◇스페이스X 성공의 ‘비밀 원천(源泉)’'
똑똑하지만, 사교성 떨어지는 ‘범생이들(nerds)’이 우글우글한 회사에서 쇼트웰은 독보적이다. 늘 고객과 직원들에게 환하게 웃는다. 물론 쇼트웰도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러나 그에겐 고교 시절 농구선수와 치어리더로 활약했던 기질이 살아 있다. 그러나 동료들은 “벨벳 장갑에 강철 주먹을 감춘 여성”이라고 그를 평한다.
미 우주항공업계에선 쇼트웰이 머스크의 충동적 기질을 잘 통제하면서, 그의 우주 꿈을 현실화하는 ‘조용한 기획자(mastermind)’, ‘비밀 원천(secret source)’이라고 평한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는 최근 “마치 서커스의 모든 부분이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조율자(orchestrator)와 같다”고 그를 소개했다.
머스크가 화성ㆍ외계 행성 탐사와 같은 NASA의 심(深)우주 계획을 공격하는 미 의회의 ‘무식한’ 의원들을 퉁명스럽게 조롱하고 싶을 때에, 그를 달래 정치권에 적(敵)을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쇼트웰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부침(浮沈)이 많고 수많은 임원이 교체됐던 테슬라와는 달리, 쇼트웰 같은 머스크의 ‘오른팔’이 있었기에 약 2만 명이 일하는 스페이스X가 지금껏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스페이스X에 발사를 의뢰하는 위성 사업자들도 “쇼트웰과 얘기하면, 그가 머스크가 관계된 부분까지 도맡아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미 언론에 말했다.
◇모든 것은 고교 때 본 한 여성 엔지니어의 멋진 차림에서 시작
쇼트웰은 사실 엔지니어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14년에 그가 한 인터뷰에 따르면, 어린 시절 그에게 엔지니어들이란 “괴짜, 사회 부적응자, 코나 후비는 인간들”이었다. 유년 시절 인기 있었던 TV 드라마 스타트렉(1966~1969년 방영)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고교생 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참석했던 여성엔지니어협회 모임에서 연사로 나온 한 여성 기업인의 멋진 모습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백, 구두, 정장이 얼마나 멋지게 어울리던지…” 당시 태양광 에너지와 친환경 건축을 소재로 한 그 연사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도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전과목 A를 받던 모범생이었지만, 그날 이후 특히 물리학 수업에 흠뻑 빠졌다.
대학은 집 근처의 노스웨스턴대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그러나 단지 공학만 강조하는 듯한 이름의 대학은 싫었다. MIT에서 지원하라는 편지가 왔을 때에, 쇼트웰은 거절했다. ‘대학 이름에까지 테크놀로지가 들어가다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졸업 후 첫 직장은 크라이슬러였다. 자동차를 좋아했고 트랜스미션ㆍ밸브 작업하는 것을 즐겼지만, 진짜 재미있고 공학적으로 어려운 작업은 대부분 외부 기업이나 외국에 하청을 주는 게 싫었다.
다시 노스웨스턴대로 돌아와 응용수학 석사를 받았고, 에어로스페이스 사에 취업했다. 쇼트웰의 첫 우주관련 기업이었다. 여기서 그는 수퍼컴퓨터로 수학적인 열(熱)모델을 만들어, 유지해야 할 온도가 제각각인 우주왕복선 화물칸의 온갖 실험 기기와 물질들에 적정 온도를 부여하고 실시간으로 이를 체크해 NASA의 휴스턴 통제센터에 보고했다. 10년 간 일하면서, 미 국방부ㆍNASA를 비롯한 정부 부처, 전세계 우주과학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후 또다른 우주기업으로 옮겼지만, 그에겐 늘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 더 있을 텐데…”라는 갈증이 있었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와의 만남
2002년 5월 동료가 이직한 스페이스X로 구경을 갔다가 머스크를 만났다. 막 창업해, 직원이 10명도 안 됐다. 한 10분쯤 얘기했을까. 쇼트웰은 “우주에 대한 머스크의 지식에 깜짝 놀랐다”고 회고했다.
쇼트웰은 머스크가 직접 로켓 엔진과 주요 부품을 만들어서, 발사 비용을 줄이려고 한다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터넷(페이팔 창업)에서 번 돈으로 뭐 좀 해볼 것 없나’하고 뛰어든 게 아니었다. 머스크의 말엔 설득력이 있었다.
스페이스X는 당시 최초의 로켓인 팰컨 1을 개발하고 있었다. 쇼트웰은 불쑥 “당신, 근데 이 로켓을 팔 사업개발자가 있어야겠네요”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머스크가 전화했다. “부사장으로 와서, 로켓 영업파트를 맡아 달라”고 했다. 쇼트웰은 곧 마흔이 되는 나이에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안정된 삶’을 원했다. 머스크는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고, 쇼트웰은 이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머스크 같은 사람이 우주산업계에 뛰어들어 뒤흔들면 좋겠지만, 자신이 그 일부가 되는 것은 망설였다.
◇팔 로켓도 없는데, 영업 담당 부사장으로
하마터면 거절할 뻔했다. 그러나 수 주간 고민 끝에 ‘이 일이 어차피 내가 하는 분야인데, 지금 방식이 좋은가, 머스크가 가려는 방향에 함께 가는 게 좋은가’ 생각했고, 머스크에게 전화했다. “이봐요. 지난 몇 주간 내가 지독하게 멍청했는데(f---ing idiot), 그 일 하겠어요.”
그러나 발사 계약을 딸 로켓도 없었다. 스페이스X의 첫 로켓인 팰컨 1은 2008년 9월에 가서야 발사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9년에 후속타로 나온 것이 지금의 팰컨 9이었다. 쇼트웰은 모교인 노스웨스턴대 동문회보 인터뷰에서 “도전이 좋아서, 머스크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머스크 “사업계획서는 관심 없으니, 그냥 하세요”
출근 첫날 쇼트웰은 팰컨 1 로켓의 판매 계획서를 보여줬다. 머스크는 힐끗 보더니 “그런 계획엔 관심 없으니, 그냥 일 하세요”라고 했다. 쇼트웰은 “오, 신선하네. 이런 망할 계획서는 안 만들어도 되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머스크의 경영 스타일은 ‘뭘 하겠다고 얘기하지 말고, 그냥 하라’는 식이다. 머스크는 2018년 한 컨퍼런스에서 “나는 충동적으로 행동한다”며 “비즈니스 플랜이란 게 없다”고 말했다. 1995년 처음 창업할 땐 그런 게 있었는데, 늘 계획대로 안 됐고 이후 사업계획서 따위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머스크처럼 당돌하면서도, 미 정치ㆍ우주산업계 지형에 익숙해
머스크는 공학적 지식이 해박했고 투자를 받는 일에도 능숙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우주산업계와, 미국에 버금가는 러시아 로켓 산업계, 유럽은 모두 철저하게 자신들의 발사 비즈니스를 보호하고 있었다. 수요자인 NASA와 미 공군, 정부 기관들도 ‘하던 대로’의 관행에 만족했다. 미 우주항공ㆍ방산(防産)기업들은 의회 로비 인맥도 탄탄했다.
머스크가 이걸 뚫으려면, 그의 당돌함을 공유하면서도 미국의 정치ㆍ산업계 지형을 잘 알아 교묘하게 헤쳐 나갈 인물이 필요했다. 그게 쇼트웰이었다. 스페이스X에 합류하기 전에, 이미 미 우주산업계에서 14년 경력을 쌓았다.
둘은 기질이 비슷했다. 무모해 보이는 것에 도전해서, 우주산업계를 원하는 방식으로 바꿔 놓겠다는 철학을 공유했다. 다만, 머스크가 퉁명스럽고 종종 사회성이 결여된 반면에, 쇼트웰은 늘 웃고 부드럽게 말했다.
2013년 NASA는 케네디 우주센터의 39A 발사대를 민간에 임대하려고 내놓았다. 달에 착륙한 아폴로 프로그램의 산실(産室)인 이 발사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모두 이 발사대에 눈독을 들였다. 쇼트웰은 이미 NASA 간부로부터 장기 임대를 내락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나중에 논란이 되지 않게, 쇼트웰은 공개입찰을 NASA에 조언했고 계획대로 스페이스X는 39A 발사대를 장기 임대했다.
두 사람은 모두 통념(通念)에 도전했다. 팰컨 1 로켓이 세 번이나 발사 실패했을 때에도, 쇼트웰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았다. 문제점을 파악하고, 불과 7주 뒤에 다시 쏴서 성공시켰다. 당시 미 우주항공업계에선 전례가 없던 속도였다.
스페이스X가 NASA로부터 40억 달러 이상의 개발 비용을 받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우주인과 화물을 보낼 드래곤 우주선을 제작한 것도 쇼트웰의 지휘 하에 이뤄졌다. 스페이스X는 2020년 5월 처음으로 자사가 제작한 유인(有人) 드래곤 우주선으로 우주인을 ISS에 보냈다. 이전까지 NASA는 ISS에 우주인과 화물을 보내려면, 러시아의 소유즈 로켓에 의존해야 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즉각 대꾸하고 싶지만”
스페이스X 회의 석상에서 머스크는 때때로 아주 기술적이고 어려운 세부 사항까지 얘기를 한다. 사업 전략과 운영을 맡은 쇼트웰이 어떻게 해서든 해내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쇼트웰은 “일론이 얘기하면, ‘그건 불가능해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라고 즉시 대꾸하고 싶지만, 입을 다문다. 그리고 그걸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쇼트웰은 이제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여러 강연에 나선다. 아무리 바빠도, 특히 여성 엔지니어들을 키워내는 자리는 거절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에서 당신이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될지 아닐지는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특히 스페이스X같이 똑똑한 사람들이 넘쳐 나는 곳에선 더더욱! 그러나 당신이 얼마나 준비가 됐는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어떤 결과를 얻게 되는지에 대해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쇼트웰은 그에게 처음 엔지니어의 꿈을 심어줬던 그 여성 기업인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살아 있다면, 90세 가까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 엔지니어들을 위한 강연에 나설 때면, 여전히 고교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갔다가 흠뻑 빠졌던 그 멋진 차림의 여성 엔지니어 얘기로 강연을 시작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