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섬월트(68) 전 미국 연방교통위원회(NTSB) 위원장은 29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179명이 사망한 무안국제공항 참사에 대해 “활주로 끝에서 (충돌한) 구조물 사이에 비행기 속도를 줄여줄 EMAS(항공기 이탈방지 시스템)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EMAS는 공항에 착륙한 항공기가 적당한 지점에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는 이른바 ‘오버런’이 발생할 경우 비행기 속도를 급격히 늦춰주는 공항의 안전장치다. 미 연방항공국(FAA) 규정을 보면 상업용 공항은 활주로 양쪽 끝으로부터 길이 300m 이상의 안전 구역(도로·바다·건물 등이 없는 구역)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대안으로 EMAS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사고가 난 무안공항의 경우 활주로 끝부터 항공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구조물까지의 거리가 약 251m에 불과했다.
섬월트는 미국의 항공·선박 등 민간 분야 교통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세계 최고 조직인 NTSB 위원에 2006년 임명됐고, 2017~2021년엔 NTSB 위원장을 지낸 항공 사고 전문가다. 2013년 아시아나항공 214편의 미 샌프란시스코 착륙 사고 당시 조사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현재는 세계 최대 항공우주 교육 기관인 엠브리리들 항공대 소속이다.
그는 이번 사고에 대해 “너무나 비극적이고 슬픈 사고”라고 했다. 이어 “영상과 사진을 보고 든 첫 생각은 ‘EMAS가 없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EMAS는 활주로 이탈 사고 발생 시 항공기 속도를 빠르게 줄이도록 설계한 경량 콘크리트 블록으로, 8년 전 마이크 펜스 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탑승한 비행기가 뉴욕 라과디아 공항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났을 때도 EMAS 덕분에 큰 피해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바닥에 보도블록처럼 설치하는 EMAS는 활주로를 벗어난 항공기가 해당 지역에 진입하면 항공기의 무게로 부서져 바퀴나 동체를 잡아끌듯 속도를 늦춘다. 한국에는 아직 설치한 공항이 없고, 2025년 완공 예정인 울릉공항에 EMAS 설치가 고려되는 정도다.
미 FAA는 도심에 있거나 오래전에 지어진 공항의 경우 충분한 완충 지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연구·개발을 거쳐 EMAS라는 신기술을 도입했다. FAA는 “표준적인 안전 구역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EMAS를 설치하면 활주로를 오버런하는 항공기를 감속하거나 멈출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미국대표부 자료를 보면 “EMAS는 지금까지 15건의 사고를 안전하게 막아 406명의 승무원·승객을 태운 항공기 15대가 추락하는 걸 막았다”고 돼 있다.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이른바 ‘버드 스트라이크(새의 비행기 충돌)’에 대해선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지만 결정적 원인이긴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특히 ‘조류 충돌로 인한 엔진 고장으로 착륙 장치(랜딩기어)가 작동을 못 했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아닐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나는 10년 동안 (사고 항공기와 비슷한) 구형 보잉 737 기종을 모는 기장으로 일했지만, 조류 충돌이 어떻게 랜딩기어의 고장을 유발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섬월트는 이어 “영상을 보면 랜딩기어뿐 아니라 플랩(주날개 뒤쪽에서 착륙 때 빠져 나와 속도를 늦춰주는 장치)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섣불리 추측하고 싶지는 않지만 새가 실제로 엔진에 부딪힌 것과 별개로 랜딩기어·플랩과 관련한 다른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했다.
☞EMAS(항공기 이탈 방지 시스템)
’engineered materials arresting system’의 앞글자를 딴 약자. 항공기가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는 이른바 ‘오버런’ 사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장치다. 활주로 밖, 풀밭 같은 완충 지대가 부족한 공항에 주로 설치한다. 보도블록 같은 모양의 구조물을 깔아두고, 항공기가 이 지역을 통과하면 이 구조물이 토기(土器)처럼 부서져 바퀴나 동체에 대한 마찰을 늘림으로써 속도를 늦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