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국제공항에서 지난 29일 발생한 항공기 폭발 사고의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활주로에서 약 264m 떨어진 위치에 설치된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시설) 구조물이 지목되자 국토교통부는 “규정에 따라 설치한 시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활주로 끝에 솟아나온 구조로 흙과 콘크리트 재질로 이뤄져 빠른 속도로 착륙한 사고 비행기가 충돌하자 거대한 폭발과 화재를 유발해 피해를 키웠다. 국토부는 이에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 등에도 비슷한 구조물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글로벌 항공안전 전문가들은 해당 시설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데 동의했다.
본지는 30일 교통안전위원회(NTSB)·연방항공청(FAA) 등에서 약 30년을 항공 사고 조사를 담당한 제프 구제티, 1995~2001년 NTSB에서 매니징 디렉터로 있으면서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 사고(1997년) 조사에 관여한 피터 괼츠, 파일럿 출신으로 국제항공조종사협회(ALPA) 항공안전위원장을 지낸 존 콕스, 미 공군·보잉 안전 담당 엔지니어 출신 토드 커티스 등 네 명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모두 민관에서 잔뼈가 굵은 항공 안전 분야의 베테랑들로 이틀 전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와 관련한 영상과 자료를 관심 갖고 보고 있었다.
이들은 활주로에서 비행기 운항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①활주로 끝으로부터 구조물까지 충분한 거리(300m)를 확보하거나 ②구조물 자체를 부서지기 쉬운 재질로 만들거나 ③활주로 이탈 시 항공기 속도를 낮춰줄 EMAS(항공기 이탈 방지 시스템)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규정은 국제민간항공기구와(ICAO) 및 미 연방항공국(FAA) 권고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안공항엔 이 세 가지 안전 장치가 모두 미흡했다는 평가다. 전문가 인터뷰 및 해외 공항 자료, 국제 항공안전 관련 문서를 분석해 무안 사고의 원인과 아직 남은 의문점을 정리했다.
◇1. “콘크리트 구조물, 허용되지 말았어야”
이번 참사에서 인명 피해가 컸던 원인으로 활주로 주변에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목됐다. 무안공항의 착륙 유도 시설은 지면이 아닌 가로 40m, 높이 2m, 두께 4m 정도 되는 둔덕(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게 언덕이 진 곳)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설치돼 있었다. 구제티씨는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깨지기 쉬운 안테나 대신에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에 대해 많은 이들의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생각한다”며 “보통은 비행기와 구조물이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활주로 표면과 그 너머를 깨끗하게 유지한다. 공항 설계에 관한 국제 표준을 충족했는지에 대해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ICAO와 FAA는 활주로 양쪽 끝에 300m 이상 ‘안전 구역(도로·바다·건물 등이 없는 구역)’을 설정하도록 권고한다. 그 안에는 되도록 아무 구조물이 없는 것이 좋으나, 로컬라이저나 조명 등 항공기 운항에 필수적인 시설일 경우 ‘파손되기 쉬운(frangible)’ 재질로 만들도록 정해두고 있다. 무안공항의 경우 활주로 끝에서부터 로컬라이저 구조물까지의 거리가 264m에 불과했다. 구제티씨는 이런 규정이 1999년 6월 미국 아칸소주(州) 리틀록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를 계기로 수립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강철 기둥에 충돌, 조종사를 포함한 1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활주로 안전구역 내) 장비·설치물·지지대 등은 항공기가 충돌했을 때 (항공기가) 통제력을 잃지 않도록 최소한의 질량으로 만들어야 하고 쉽게 파손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ICAO의 ‘공항 설계 매뉴얼’에 나오는 문구다. 강제성은 없지만 각국 공항공사 등은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안전 지침을 설계하는 것이 보통이다.
◇2. LA 공항도 비슷? “무안보다 안전 구역 길다”
영국의 항공 안전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 플라이트글로벌 편집장은 30일 본지 인터뷰 요청에 보내온 자신의 블로그 글에서 “만약 그 장애물(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면 항공기는 로컬라이저를 통과해 평탄한 지형과 철조망을 지나 멈췄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탑승자 대부분, 어쩌면 전원이 생존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그는 “왜 이런 착륙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한국 당국이) 진정으로 답해야 할 질문은 그 장애물은 대체 무엇이고 대체 왜 거기 있었는가이다”라고 역설했다. 괼츠씨 역시 “(무안공항은) 활주로 끝에 이 장벽을 설치하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며 “미국의 공항이라면 (이 구조물이)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국토부가 ‘비슷한 구조물’이라고 지목한 LA 국제공항의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어떤 모습일까.
본지가 구글 맵 위성 지도를 통해 확인한 결과 LA 공항은 서쪽으로 바다, 남쪽과 동쪽으로는 주택 밀집 지역과 맞닿아 있다. 2개의 활주로 길이는 약 약 3048m 정도로 무안보다 길었고, 활주로 양쪽엔 ‘안전 구역’을 약 300m씩 마련해 놓았다.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이 안전구역이 끝나자마자, 그 바깥에 있다.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구조물 높이는 약 2m였는데, 위성 지도에 나온 그림자 길이로 볼 때 LA 공항의 로컬라이저 높이는 이보다는 훨씬 낮아 보인다.
국토부가 언급한 스페인 테네리페 공항 및 남아공 킹팔로 공항의 활주로 밖 안전구역은 약 220~230m로 무안공항보다 짧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조물 사양은 아직 확인 중이나, 킹팔로 공항은 지난 11월 로컬라이저를 대대적으로 보수해 콘크리트 구조물의 크기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3. “안전 거리 짧다면, EMAS라도 있었어야”
리어마운트 편집장의 블로그 글엔 미 항공 토목 전문가 존 버버그 ‘앳킨스레알리스’ 이사가 반박 댓글을 달았다.(앳킨스레알리스는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가 있는 건설·토목 엔지니어링 업체다.) 버버그 이사는 “미국 켄터키주 렉싱턴의 블루그래스 공항에는 나무 구조물이, 미국 켄터키주 제퍼슨 카운티 루이빌 국제공항에는 (무안공항과 유사한) 콘크리트와 흙 둔덕이, 미국 조지아의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 국제공항에는 반대편에 매우 가파르고 깊은 경사가 있는 언덕 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세 공항엔 그런데 EMAS라는 또다른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다. EMAS는 공항에 착륙한 항공기가 적당한 지점에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는 이른바 ‘오버런’이 발생할 경우 비행기의 속도를 늦춰주는 장치다. 바닥에 보도블록 같은 구조물을 깔아두고, 항공기가 이 지역을 통과하면 구조물이 토기(土器)처럼 부서져 바퀴나 동체에 대한 마찰을 늘림으로써 비행기를 잡아끌 듯 멈추게 하는 장치다. 미 FAA는 “표준적인 안전 구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EMAS를 설치해 활주로를 벗어나는 항공기를 감속하거나 멈출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ICAO에 따르면 EMAS는 지금까지 15건의 사고, 406명의 인명 피해를 막았다.
구제티씨는 “미국 공항들은 FAA 지침에 따라 안전 거리 300m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EMAS를 설치한다”고 했다. 커티스씨는 “EMAS가 항공기 사고를 막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은 이미 입증이 됐다. 활주로 끝에 EMAS가 설치돼 있었다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했다. 한국엔 EMAS가 설치된 공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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