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를 놓고 항공기 강제 제동장치 중 하나인 ‘이마스(EMAS·항공기 이탈방지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EMAS는 공항에 착륙한 항공기가 적당한 지점에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는 이른바 ‘오버런’이 발생할 경우 비행기 속도를 급격히 늦춰주는 공항의 안전장치다. 바닥에 보도블록처럼 설치돼 활주로를 벗어난 항공기가 해당 지역에 진입하면 항공기의 무게로 부서져 바퀴나 동체를 잡아끌듯 속도를 늦춘다. 항공모함에 착륙하는 전투기를 갑자기 감속시키는 극단적인 방식의 착륙 장치라고 생각하면 쉽다.
로버트 섬월드 전 미국 연방교통위원회(NTSB) 위원장은 29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무안 참사를 보고 활주로 끝과 구조물(콘크리트로 된 둔덕) 사이에 EMAS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도심에 있거나 오래전에 지어진 공항의 경우 충분한 완충 지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연구·개발을 거쳐 EMAS라는 신기술을 도입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미국대표부는 “지금까지 15건의 사고를 안전하게 막아 406명의 승무원·승객을 태운 항공기 15대가 추락하는 걸 막았다”고 했다. 이 EMAS의 ‘위력’이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됐던 게 8년 전인 2016년 10월 27일 미 이스턴 항공 3452편이 뉴욕 라과디아 공항 활주로에서 이탈했을 때다. 거기에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분주하게 전국을 누비던 마이크 펜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를 비롯한 48명이 탑승해 있었다.
이날 오후 4시 23분 아이오와주(州)의 포트 닷지 공항을 이륙한 3452편(보잉사 737-700, 무안 사고 기종은 737-800)은 오후 7시39분 라과디아 공항 관제탑으로부터 착륙을 허가받았다. 그런데 부기장이 비행기를 하강하는 과정에서 정상 경로를 이탈해 훨씬 더 높은 고도로 비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복행(정상 착륙이 불가능하다 여겨질 때 조종사 판단에 따라 다시 이륙하는 상황) 대신 착륙을 강행했는데 사고기는 2100m 활주로 중 절반이 넘는 1260m를 지나고서야 착륙을 할 수 있었다. 활주로의 남은 거리가 불과 840m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장·부기장은 바퀴의 브레이크와 엔진 역(逆)추진장치를 최대치로 작동시켜 비행기를 세우려 했다. 추후 공개된 교신 음성을 들어보면 당시 기장이 비명 소리를 지르고 관제탑에서 “멈추라”는 얘기를 반복했을 정도로 상황이 급박했다.
착륙 16초 만에 활주로를 이탈한 사고기는 활주로 너머에 있는 EMAS를 시속 65km 속도로 밟았고 50m를 지난 지점에서 멈춰 섰다. 뉴욕 도심에 인접한 라과디아 공항 특성상 인구 밀집 지역과 맞닿아 있어 하마터면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섬월트는 “EMAS가 없었다면 비행기는 활주로를 지나가 (불과 300피트 떨어진) 8차선 고속도로(그랜드 센트럴 파크웨이)로 가게 됐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현지 언론은 “펜스를 태운 보잉기가 심각한 재난을 피할 수 있었던 건 기술 혁신과 정부 규제의 조합 덕분”(IT 전문매체 매셔블)이라며 ‘현대 기술의 가치’를 보여준 사례로 EMAS를 조명했다. 구사일생한 펜스 자신도 이듬해 6월 백악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내가 경험해봤는데 더 정밀한 착륙(precise landing)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수도 워싱턴DC와 인접한 로널드 레이건 국제공항을 비롯한 미국 내 상당수 공항에 이 시설이 갖춰져 있다. FAA에 따르면 이 기술이 도입된 뒤 공항 500여 곳에서 1000개가 넘는 활주로에 대한 안전 개선 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EMAS(항공기 이탈 방지 시스템)
‘engineered materials arresting system’의 앞글자를 딴 약자. 항공기가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는 이른바 ‘오버런’ 사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장치다. 활주로 밖, 풀밭 같은 완충 지대가 부족한 공항에 주로 설치한다. 보도블록 같은 모양의 구조물을 깔아두고, 항공기가 이 지역을 통과하면 이 구조물이 토기(土器)처럼 부서져 바퀴나 동체에 대한 마찰을 늘림으로써 속도를 늦춰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