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거 합류하면서 정책적 철학이 다른 정통 미국 우선주의(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구호) 진영과 충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양 진영은 고숙련 이민(H-1B) 비자 문제를 놓고 한 차례 얼굴을 붉히며 충돌했다. MAGA 진영은 트럼프 1기(2017~2021) 때부터 인연을 맺은 관료·정치인·언론인 등이 많다. 반(反)이민, 반자유무역 등 확고한 ‘미국만 우선’ 기조가 이들의 특징이다.
트럼프 1기 때부터 강경 반이민 정책을 설계했던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비롯한 MAGA의 핵심 세력이 “해외 이민자들로부터 미국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이민 비자를 ‘사기’라고 비판하는 것과 달리, 트럼프의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비롯한 테크계 인사들은 해외 인재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인 머스크를 포함한 실리콘밸리 인사 중엔 인도·중국·대만계를 비롯한 해외 이민자 출신이 많다.
대(對)중국 견제 문제에 대해서도 갈등이 예상된다. 트럼프 1기 때 대중 전쟁을 주도한 피터 나바로 2기 백악관 무역 및 제조업 담당 선임 고문은 저서 ‘중국의 죽음’에서 “중국이야말로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며 절대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전면적 관세·제재를 통한 중국과의 완전한 경제 분리(디커플링)를 주장한다. 반면 머스크는 중국 상하이 공장(기가팩토리)에서 전체 절반에 달하는 테슬라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유리한 상황이란 뜻이다.
무역·통상 측면에서도 양측은 철학이 엇갈린다. MAGA 세력은 미국 내 제조업 강화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반면, 실리콘밸리 진영은 IT(정보기술) 산업 특성상 글로벌 공급망 활용을 중시하는 자유무역 성향이 강하다.
두 진영의 정치적 타협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지에 따라 트럼프가 추진하고자 하는 개혁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MAGA 진영 역시 ‘딥 스테이트’라 불리는 뿌리 깊은 관료제 청산을 주장하는 만큼 비효율적 규제 철폐와 행정 개혁을 공언한 실리콘밸리 세력과 협력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각에선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MAGA 진영의 과도한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 등을 실리콘밸리 진영이 적절히 견제하리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