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타계를 계기로 부고(訃告) 기사에 각별한 정성을 쏟는 미국 언론의 관행이 재조명됐다. 이미 퇴직했거나 사망한 언론인 이름이 카터의 부고 기사 바이라인(작성자 이름)에 등장했는데, 이들이 부고 기사를 위해 길게는 수십 년 공을 들인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978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입사해 기자로 45년을 일한 제임스 해거티(68)씨는 커리어 후반부터 부고 전문 기자로서 1000명이 넘는 이들의 죽음을 다뤘다. 2년 전 이런 경험을 녹여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는 책도 출간했다.(이 책은 외국어로는 한국어로만 번역됐다) 그는 지난 4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아무리 가까운 가족·친구라도 당신의 인생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며 “너무 늦기 전에 나에 대한 부고 기사를 직접 써보라. 현재의 삶에도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해거티와의 일문일답.
-미 언론은 왜 부고 기사에 각별한가.
“부고는 단순히 죽음을 알리는 공지가 아니다. 그 사람이 인생에서 무얼 하려 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은 전기(傳記)다. 명성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거기엔 크고 작은 가르침이 있다. 이 때문에 대형 언론사들은 부고 기사에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WSJ만 해도 미리 써놓은 부고가 수백 건이고, 뉴욕타임스(NYT)는 아마 수천 건을 쟁여놨을 것이다.”
-부고 기사를 쓸 때 무엇이 중요한가.
“당사자가 살아 있을 때 연락해 진짜 궁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게 예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후세에 올바르게 전달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디테일도 생명이다. 최근 타계한 카터는 백악관 테니스 코트 사용 일정을 자신이 직접 관리했다. 이건 카터가 모든 일에 만기친람(임금이 모든 일을 몸소 다스림)했다는 단서로, 그가 어떤 유형의 지도자였는지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팩트!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틀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죽음을 좇는 일이 우울하지는 않나.
“전혀 그렇지 않다. 죽었다는 건 한 문장으로 묘사하면 그뿐, 부고를 쓸 때 죽음이 아니라 그의 삶을 생각한다. 왜 그때 그렇게 됐는지 생각하는 일이 흥미롭다. 또 고인의 가족·친구들과 1시간 넘게 얘기를 나누면서 꽤 자주 웃음을 터뜨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슬픔에 잠겨 있는 상태지만 그들은 망자에 관해 얘기하고 싶어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고맙게 생각한다.”
-행복한 인생엔 어떤 공통점이 있나.
“놀라운 발견은 아니지만 낙관적인 사람들이 인생을 더 잘 살아낸 경향이 있다. 그들은 가장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공한 유대인들의 부고 기사를 쓸 기회가 많았는데 상당수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생존하기 위해 강인해져야 했고 회복 탄력성도 상당했다. 그런 게 성공의 요소 아니었을까.”
-자신의 부고를 미리 써두라고 했다.
“대부분 고인의 자녀들은 부모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예를 들어 부친은 왜 생물학을 전공했는지, 왜 농장을 운영했는지 이런 질문들 말이다. 유명인이든 아니든, 늦기 전에 기억을 기록하지 않으면 당신의 인생이 사라지게 된다. 대부분 죽기 직전 이걸 생각하는데 그땐 늦는다. 나는 60 넘어 내 부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모친의 부고 기사는 79세일 때 시작했다. 노년에도 기자로 활동한 모친은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이다. 13년 전 노스다코타주의 지역 언론에 쓴 이탈리안 식당 ‘올리브 가든’ 평론 기사가 소문으로 퍼져 전국구 스타가 됐다. 말년에도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이걸 적어 놓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문학적 수식어나 기술적인 부분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 술집에 앉아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쓰면 된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흥미로운 이야기 위주로 써보라. 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쓰일지 고민하는 건 지금의 삶을 사는 데도 큰 동기 부여가 된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고민해 보는 중간 점검 같은 것이다. 부고 기사는 개인의 기복, 성공과 실패, 영욕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 실수, 약점, 굴욕처럼 감추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걸 직시함으로써 인생이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