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 파나마 운하 소유권을 미국으로 가져오고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미 영토로 매입하는 문제와 관련,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는 이날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 별장에서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후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 장악을 위해 군사력·경제력 강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느냐”는 질문에 “무엇도 약속하지 않겠다. 뭔가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대선 이후 여러 차례 미국의 경제·국가 안보를 위해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를 미국이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한발 더 나아가 군사력 사용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오는 20일 출범할 트럼프 ‘2기’의 미국이 전례를 찾기 어려운, 동맹국과의 영토 분쟁까지 배제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캐나다에도 최근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어떤가”라고 잇따라 압박해 캐나다 국민의 반발을 사고 있다. 덴마크와 캐나다는 미국과 집단 안보 동맹을 맺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다. 뉴욕타임스는 “19세기 후반 미국이 필리핀·괌·푸에르토리코를 지배하게 된 이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가의 영토 확장을 위해 무력 사용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위협한 적은 없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취임을 앞두고 ‘미국 우선주의’ 노선을 강조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하는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이날 차기 백악관 인사들을 대동하고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방문했다. 트럼프는 장남의 그린란드 방문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면서 “이것(미국의 그린란드 영토 매입)은 반드시 일어나야 할 거래다. 그린란드를 다시 위대하게”라고 올렸다. 미국 우선주의를 상징하는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그린란드 버전으로 변형해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파나마에 대해 “중국이 파나마 운하를 장악하고 있는데, 미국이 운하를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무역 전쟁을 예고한 중국이 파나마 운하 인근의 주요 항구와 시설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린란드에 관해선 “주민들이 미국으로의 편입 투표에 나설 경우 덴마크 정부가 이를 방해한다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덴마크가 그린란드에 대해 법적 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해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1기(2017~2021년) 때도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같은 논리를 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조가 훨씬 구체적이고 강경해졌다.

그린란드 간 트럼프 장남 -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오른쪽)가 그린란드 수도 누크를 찾았다. 그는 현지 매체에 "관광객으로 왔다"고 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는 또 불법 이주자 대규모 추방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한 멕시코를 향해 미국과 멕시코에 둘러싸여 있는 해역인 ‘멕시코만(灣)’ 이름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동안 국방비 증액을 압박해온 나토 회원국들에는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로 늘려라”고 했다. 나토 회원국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권고 기준은 ‘2% 이상’인데 이를 더 늘리라고 압박한 것이다.

트럼프에게 지목당한 나라들은 당황하며 반발하고 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지난달 트럼프가 비슷한 발언을 했을 때 “구시대적 제국주의 사고”라고 비난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이날 트럼프 기자회견 이후 “그린란드는 판매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트럼프의 잇따른 공격을 받다가 결국 지난 6일 사임 의사까지 발표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캐나다가 미국의 일부가 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했다. 나토 관계자들은 익명을 전제로 트럼프의 발언이 “동맹국 간 신뢰를 약화시키고, 러시아와 중국 같은 경쟁국들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같은 발언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해치고, 동맹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다만, 그가 실제 전쟁을 선포하지 않는 이상 현실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국내 정치용, 혹은 차후 협상용으로 보는 분위기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하려는 트럼프가 취임 전 국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연일 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