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미국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클린턴, 부시, 오바마 전 대통령 등 역대 전직 대통령들이 포드 전 대통령이 생전에 써놓은 카터 추도사를 들으며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포드는 추도사에서 "한 방에 두 명의 대통령은 너무 많다"는 말을 인용하며 자신이 카터와 함께 에어포스원에 탔던 일화를 소개했다. /NBC

9일 오전 미국 워싱턴DC의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울음 보다는 웃음이 가득했던 한 편의 축제 같았다. 카터의 손자, 또 카터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생전에 써놓은 카터의 추도사를 포드의 아들이 대독했을 때 성당은 조문객들이 자아내는 따뜻한 웃음으로 가득찼다.

카터의 손자인 제이슨 카터가 가족을 대표해 10여분간 낭독한 추도사에서 조문객들은 ‘스탠딩 코미디’를 보듯 손자가 회상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카터의 손자가 “두 분(카터 부부)이 얼마나 평범한 분들이었는지 여러분께 알리고 싶다. 물론 조지아 주지사 관저에서 4년, 백악관에서 4년을 지내셨지만, 그 나머지 92년은 모두 조지아주 고향집에서 지내셨다”고 추도사를 시작하자 조문객들의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카터의 생전 나이는 100세였다.

카터의 손자는 카터의 검소함과 평범함을 강조하며 “할아버지 집에 가면 할아버지는 1970년대풍의 짧은 반바지와 크록스를 신고 집 앞에 나타나실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전화기는 여전히 코드가 달린 채 부엌 벽에 고정되어 있어서 마치 박물관 전시품 같았고, 대공황 시절에 배운 절약 습관 때문에 싱크대 옆 선반에는 지퍼백을 씻어 말리는 모습도 보였다”고 했다.

그는 “시대가 바뀌며 할아버지도 결국 휴대전화를 사셨는데, 어느날 휴대전화로 제게 전화를 걸어오신 적이 있다”며 “‘여보세요, 할아버지’라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으셨다. ‘접니다, 제이슨이요’ 했더니 ‘거기서 뭐하고 있니’라고 하시더라”고 했다. 카터의 손자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었는데요, 할아버지가 전화주신 거잖아요’라고 했더니 ‘난 전화 안했다. 사진 찍고 있었는데?’라고 답하시더라”고 했다. 조문객들은 계속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참고로 할아버지가 핵공학자 출신이시죠?”라고도 했다. 카터가 미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핵잠수함 프로그램 등에 참여해 핵 관련 분야에 다양한 경험을 가졌는데 휴대전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모습을 회고한 것이다.

9일 미국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카터의 손자가 생전의 할아버지를 회고하며 카터가 휴대전화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NBC

카터의 손자는 이후 할아버지가 주지사·대통령으로서 인종차별 종식과 대량 수감 제도의 문제점을 짚으며 정치적·시대적 선구자적 역할을 한 점, 퇴임 이후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서 40년간 봉사하며 살았던 삶을 담담히 회고했다. 그는 “저희 가족에게는 부엌에서 팬케이크를 만들고 계시거나, 목공 작업실에서 증손주를 위한 요람을 마무리하시거나, 할머니와 함께 송어 낚시터에 서 계신 모습, 혹은 제가 기억하는 남부 조지아 들판과 숲길을 거니시던 모습으로 언제나 살아 계실 것 같다”며 추도사를 마무리했다.

카터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포드 전 대통령이 생전에 써놓은 추도사를 포드의 아들이 대독했을 때도 조문객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2006년 타계한 포드는 부통령이었던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후, 1976년 대선에서 카터와 맞붙었지만, 카터가 당선됐었다. 퇴임 후 정치적 경쟁을 넘어 깊은 우정을 쌓은 포드와 카터는 생전에 서로의 추도사를 미리 써놨다.

포드는 아들이 대독한 추도사에서 “한때 지미 카터와 저는 라이벌이었다”며 “이제 지미가 저보다 10년은 더 오래 살 것 같으니, 저는 제 추억을 아들(스티브)에게 맡겨두려 한다”고 했다. 포드는 “우리는 공유한 가치가 있었기에, 지미와 저는 서로를 경쟁 상대로 인정했음에도, 나중에는 친애하는 친구가 될 수 있었다”며 “그렇다고 해서 지미가 제 신경을 건드린 적이 없다고는 말 못 하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 중 상대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요?”라고 했다. 조문객들을 비롯해 성당에 있던 클린턴, 부시, 오바마 전 대통령 등도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포드는 추도사에서 “1976년 선거에서 지미는 제가 지닌 정치적 취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물론 저는 그게 달갑지 않았지만, 그때는 그 선거 결과가 제게 얼마나 깊고 오래 가는 우정을 가져다줄지 꿈에도 몰랐다”며 “1981년 여름, 우리는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에어포스원에 같이 타고 카이로로 가는 길이었다. 흔히들 ‘한 방에 두 명의 대통령은 너무 많다’고들 하는데, 저 역시 그 긴 여정이 얼마나 어색할지 살짝 걱정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오히려 너무 짧게 느껴졌다. 대서양 상공 어디쯤에서, 지미와 저는 정치를 뛰어넘는 우정을 맺게 됐다”며 “가족, 신앙 이야기, 그리고 백악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인생이 계속된다는 놀라운 경험들, 우리 모두 대통령 도서관 건립 비용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한탄했고, 더 안타까운 건 그 막대한 기금을 전직 대통령 본인이 직접 모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고 했다.

생전의 포드와 카터 전 대통령. /포드 대통령재단

포드는 “정직과 진실함은 지미 카터라는 이름과 동의어였다. 지미 카터에게 정직은 그저 이상적 목표가 아니라 그의 영혼 자체였다”며 “저와 지미 둘 다 선거에서 패배하는 고통을 겪었고, 그것이 얼마나 쓰라린 경험인지를 잘 알았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적 패배가 가져다주는 ‘자유’를 깨닫기도 했다”고 했다.

포드는 “이제 작별인사를 건넬 시간이 왔나 보다. 우리는 이 훌륭한 분을 알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쁨과 감사로 조금이나마 위로받고 있다”며 “제 입장에서는, 지미,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나눌 이야기가 여전히 많다. 대통령님. 오래된 벗이여, 이제 집으로 돌아오십시오”라고 했다. 조문객들과 함께 웃음을 터트리며 생전 아버지가 써놓은 글을 읽어 내려가던 포드의 아들도 마지막 부분에서는 잠시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며 추도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