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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 다이어트하는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 의사가 비만을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 콜롬비아대 어빙메디컬센터 루돌프 라이벨 박사가 뉴욕타임스(NYT)에 이렇게 말했다. 노보노디스크 ‘위고비’의 선풍적인 인기로 비만치료제가 세상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부상하면서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바이오테크도 비만약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효과와 편의성을 높인 새로운 치료제들이 개발되면서 비만약을 둘러싼 ‘왕좌의 게임’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GLP-1) 계열 비만 치료제들이 체중 감량에 높은 효과를 보이면서 관련 치료제 시장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2027년까지 주요 질환 치료제 중 비만 치료제가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면서 관련 시장도 연평균 35%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2030년 시장 규모도 기존 450억 달러(약 59조8700억 달러)에서 점점 늘어나 1000억 달러까지 올라가고 있다.

◇비만치료제, 적응증·제형 변화로 영역 확대

본래 당뇨치료제로 개발된 GLP-1 계열 치료제들이 비만에 그치지 않고 적응증과 제형을 확대하며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비만치료제 개발과 기술 도입에 출사표를 던지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하루에 한 번 먹는 알약 형태의 비만치료제를 올해 하반기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신약 승인 신청을 할 계획이다. 경구용 비만치료제는 68주 투약 시 17.4%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승인 과정에 문제가 없다면 내년 출시될 예정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달 임상 3상을 통해 위고비 주요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심혈관 질환 위험을 20%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및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적응증을 확대하는 임상도 진행 중이다. 위고비를 비롯한 다른 비만치료제들도 심혈관, 관절, 수면 무호흡증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를 보이면서 적응증이 확대되고 있다.

화이자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다누글리프론의 개발 막바지에 들어갔다. 1일 2회 경구 복용하면 되는 치료제의 임상을 올해 말 마무리하고 주 1일 복용할 수 있는 제형 개발에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독일의 베링거인겔하임은 GLP-1 계열의 비만치료제 ‘서보두타이드’ 임상 2상을 공개했으며 미 암젠도 한 달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비만 치료 주사제의 임상 1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한 뒤 2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지금까지 나온 치료제 중 가장 체중 감량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트리플 아고니스트의 임상 3상 결과를 2025년 발표하고 이듬해 신약을 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만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들의 합종연횡이 이어지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새로운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버사니스 바이오를 19억 2500억 달러에 인수했다. 버사니스 바이오가 가지고 있는 ‘비마그루맙’은 근육량에 영향을 주지 않고도 지방을 줄일 수 있어 비만 치료제로 활용 가능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캐나다 바이오텍 인버사고와 덴마크 비만치료기업 엠바크 바이오텍을 인수했다. 각각 임상 2상에 진입한 경구용 비만치료제와 새로운 기전의 비만치료제 후보물질을 가지고 있다.

◇국내 제약사 “아직 늦지 않았다”

한미약품은 미래 성장 동력으로 비만치료제를 점찍었다. 한국인 맞춤형 GLP-1 비만 치료제로 개발 중인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인슐린 분비와 식욕 억제를 돕는 위억제폴리펩티드(GIP)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차세대 삼중작용제를 포함한 5종의 치료제를 준비한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 3상을 위한 임상시험계획 승인신청서(IND)를 제출했다. 2020년 미국 머크에 기술이전한 ‘에피노페그듀타이드’도 GLP-1 치료제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일동제약은 경구용 당뇨 및 비만 치료제 개발에 돌입했다. 이달 초 식약처로부터 임상 1상 IND 승인을 받아 본격적인 임상에 착수했다. HLB제약은 한 번 주사로 한 달 이상 효과가 지속되는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장기 지속형 주사제 플랫폼 기술을 활용해 약물 초기 과다 방출 문제 등을 해결할 계획이다. 대원제약은 마이크로니들 개발 기업 라파스와 함께 붙이는 형태의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머리카락 3분의 1 두께의 미세한 침으로 고통 없이 피하까지 약물을 전달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