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노성훈 교수에게는 세계적인 위암 수술 대가라는 말이 접속사처럼 붙는다. 지금까지 시행한 위암 수술이 1만1000여 건이다. 모두 위암 2기 이상의 배를 여는 개복 수술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기록이다. 전 세계 위암 학계가 인정하는 세계 최다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지만, 인체 대상 의료 행위는 기네스북 기록 대상이 아니다. 이런 위업에 해외 의학계에선 그를 ‘닥터 몬스터(괴물 의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 교수는 조선일보 의학 유튜브 콘텐츠 ‘명의의 전당’에서 “위암이 배 속에 퍼진 말기 상태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며 “항암제를 써서 위암 분포를 줄인 다음에 수술로 제거하면 생존 기간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가장 흔한 암 중의 하나인 위암 극복을 위한 그의 열정과 헌신은 여전히 불타올랐다.

조선일보 고품격 의학 토크쇼 ‘명의의 전당’에 출연한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교수가 위암 수술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보비 수술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노 교수는 세계 최초로 위암 수술에 메스 대신 전기 소작기(보비)를 활용했다. /오!건강

메스(수술용 칼)를 쓰는 외과 의사를 흔히 칼잡이라고 하는데, 노 교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칼을 쓰지 않는 수술법 덕분이다. 그는 34년 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과 조교수 시절, 메스 대신 ‘보비(bovie)’라고 불리는 전기소작기로 위암 수술을 시작했다. 노 교수는 “위암 수술은 출혈을 줄이고 시간을 최소화하는 게 환자 회복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데 보비로 조직을 자르면 전기 열 때문에 자동으로 지혈이 되면서 수술 시간을 기존 방법보다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위장 해부학 구조에 통달했던 노 교수는 보비로 쓱쓱 그으며 순식간에 위암 달린 위장과 주변부 림프절을 제거했다. 국제소화기외과학회에서 이 수술법을 동영상으로 공개하자 일본 위암 수술 대가들이 맨 앞줄에 앉아 지켜봤다. 발표가 끝나자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 교수의 보비 수술법은 위를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할 때 위와 함께 떼어 내던 비장도 보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개복 수술이라면 이제 거의 모든 외과 교수들이 비장을 보존하는 ‘보비 수술’을 한다.

그는 5무(無) 수술을 개발했다. 칼을 없앤 것처럼 콧줄과 배액 심지(관), 수혈, 배꼽 밑 절개 상처를 없앴다. 위장 수술 후 내부 가스를 빼기 위해 넣었던 콧줄, 수술 후 복강 내 차는 진액을 배 밖으로 빼는 심지도 없어졌다. 출혈이 없으니 수혈도 필요 없어졌다. 배를 위에서 아래로 절개할 때 굳이 배꼽 밑으로 길게 하지 않아 수술 상처도 줄였다. 노 교수는 “환자들이 수술 후에 콧줄, 심지를 끼고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해서 과감히 바꿔보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노 교수 인생에 암(癌)은 의사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 아내를 담관암으로 잃었고, 자신도 후두암으로 투병 생활을 했다. 공교롭게도 2014년 연세암병원 병원장을 하던 때였다. 성대 세포 변성으로 목소리가 자주 쉬어 6개월마다 후두 내시경을 받아왔는데 공교롭게도 그해 문을 연 암병원장을 맡느라 검사를 1년 쉰 탓에 2기 후두암이 발견됐다. 노 교수는 “암병원장이 암에 걸려 진료를 쉰다는 말이 나올까 봐,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쉰 목소리로 암 환자를 계속 봤다”며 “당시엔 말이 필요 없는 수술 시간이 제일 편했다”고 말했다.

매년 약 3만명이 위암으로 진단된다. 5년 생존율은 초기에 발견되는 1기의 경우 95%이지만, 4기는 15% 내외로 뚝 떨어진다. 3기부터는 수술 후에도 대부분 항암 치료가 필요하다. 노 교수는 암 유전자 검사법을 개발해 수술 후 항암 치료를 할 때 환자에게 적합한 항암제를 쓰도록 하고 있다. 노 교수는 “누구도 암을 피해가기 어려운 ‘암 동행 시대’”라며 “전략적으로 암 치료법을 짜고, 시행하는 의사를 믿고 따르고, 환자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암을 이겨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