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수전노’ 스크루지영감은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고 이웃과 단절한 채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불행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전날밤 꾼 악몽이 그를 착하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로 변하게 해 행복을 찾아 주었다.

지금 의학적으로 보면 스크루지영감은 대인기피증은 물론 다양한 성격장애를 가진 신경증 환자다. 이런 그를 개과천선하게끔 만든 ‘악몽’은 어떻게 치유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2009년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로 만들어진 찰스 디킨스 소설 원작인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크루지 영감.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20세기가 박테리아·바이러스 중심의 세균성 질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신경증 질환시대다. 불면증・우울증・불안・공황장애・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로 걱정하는 이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신경질환의 근본원인은 눈에 보이는 신체 기관의 고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상태의 부조화 내지 장애에서 비롯된 것이라 원인 발견도 어렵고 완치는 더 어렵다.

병원에 가면 수면제나 항우울·항불안제 등의 약을 주는데 대부분 증상을 완화시키는 대증요법이지 본질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두뇌나 정신 작용은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게 수두룩한 ‘블랙박스(Black Box)’라 오진이나 과잉진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장을 역임하고 ADHD 전문가로 꼽히는 김창윤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요즘 누적된 스트레스나 번아웃, 가벼운 우울증을 가지고 성인 ADHD로 진단하거나 심지어 조현병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걱정한다.

# 신경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약물 외에 심리상담이 있다. 경험 많은 심리치료가나 상담사와 보통 1주일에 한번씩 만나 수개월간 상담하면서 치료하는 것인데 미국 등 구미에선 대중화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일천하다.

상담을 통한 치료는 무의식적으로 억압돼 있던 마음의 상처가 드러나거나, 또는 자신이 알지 못하던 사고방식이나 심리패턴의 문제점을 발견해 스스로 치유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마음 속 깊은 곳을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라 상담자의 능력과 함께 시간・돈・당사자의 적극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미국에선 자신의 고민이나 정신적 어려움을 전문가에게 털어놓고 해결을 구하는 심리상담이 일반화 돼있다. /셔터 스톡

심리상담은 원조(元祖)격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롯 ▲아들러 학파의 개인심리 ▲빅터 프랭클의 실존(實存) ▲칼 로저스의 인간중심 ▲앨버트 엘리스의 인지행동 상담 등이 다양하게 있는데 보통 절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중 ‘인지행동상담’이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 있다. 방법이 권위주의적 문화와 주입식교육을 받은 한국인들에게 맞는 편인데다, 문제의 핵심에 바로 들어가 해결을 도모하는 ‘속전속결’ 상담치료이기 때문인 듯싶다.

인지행동상담은, 신경증의 원인이 그 사람의 비합리적 인지(認知・생각・사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교정해 합리적 사고로 바꾸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생각을 바꾸면 상황도 바뀐다’는 것이 핵심 개념인데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상담에서 바꾸어야 할 대표적인 비합리적 사고패턴은 다음 4가지다.

◇ 심리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비합리적 사고패턴 4가지

①당위적 사고= 생각이나 대화에 ‘반드시’, ‘꼭’, ‘항상’ ‘…해야 한다’가 포함.

(“나는 꼭 성공해야 된다”, “배우자는 항상 헌신적이어야 한다”, “자식은 꼭 일류대를 가야한다”)

②과장적 사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훨씬 부풀리거나 극단적・최악의 모습을 상정.

(“퇴직하고 나니 앞날이 끔찍하다”, “배우자는 나를 사람 취급 하지 않다”, “큰일 났어. 대학이라도 갈 수 있겠나”)

③인간 비하적 사고= 작은 잘못 하나에도 자신이나 타인을 비하 내지 부정적으로 평가

(“난 실패한 인간이야, 무능해”, “배우자는 인성이 안된 사람이다”, “내 자식이지만 싹수가 노래”)

④ 낮은 인내성= 불편 또는 욕구가 좌절된 상황을 못참는 경우

(“내가 이런 대접받다니 참을 수 없어”, “배우자를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어”, “그 애 행동 절대로 용납 못해”)


이 4가지 사고패턴은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부딪힐 때 나올 수 있는 생각들이다. 문제는 이것이 반복돼 하나의 습관이 되고, 신념화돼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사사건건 자기나 타인과 부딪힐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상황이 나빠지고 신경증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상담은 이런 잘못된 사고습관을 밝혀내고 극복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자각하고, 직면하고 통찰(깨달음)로 연결되면서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수용-개방-유연성 과정을 거치면서 고쳐나가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영감이 착하고 따뜻한 노인으로 거듭나도록 깨달음을 준 악몽이 일종의 인지행동상담 치료다.

# 돌이켜보면 나도 저 4가지를 갖고 있는 대표적 한국인이다. 그런 나의 비합리적 사고패턴들이 문제가 돼 10여년전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은 듯싶다.

다행히 정신과 약물치료와 운동, 긍정적 사고방식, 명상, 취미생활, 자기성찰 등을 통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단련하면서 심신의 건강을 되찾았다. 이때 ‘인지행동’치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어찌 보면 우울증은 내 인생 후반기 선물처럼 다가왔다. 이를 통해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으며, 늘 바깥으로 떠돌던 내 사고를 안으로 돌려 자신을 성찰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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