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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특별한 정부 부처가 있다. 2018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다. 장차관까지 있는 이 부서에는 보편적 감정으로 여겨지던 외로움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겠다는 영국 사회의 의지가 담겨 있다. 계기가 된 건 2017년 영국 고독 문제 대책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였다. 영국 전체 인구의 14%(900만명)가 외로움을 겪고 있고, 이들의 3분의 2가량은 속내를 털어놓을 곳조차 없다는 내용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범죄나 약물 중독, 자살 증가 같은 사회적 문제의 배경에 이런 외로움이 있다고 본 것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진표 교수 연구팀이 20일 ‘2023 정신건강의 날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이 미치는 정신건강적 영향에 대한 연구’다. 연구팀은 지난 2021년 전국의 만 18~79세 5511명을 대상으로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정신장애 유병률과 자살 경향성 등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고독 문제를 특정 연령대가 아닌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 대규모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픽=김하경

연구진은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나눠서 분석했다. 둘 다 사회적 연결의 부재에서 비롯되지만, 외로움은 주관적 감정이고 사회적 고립은 사회와의 연결 정도와 빈도로 측정 가능한 객관적 상태이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전체의 11.4%(626명)로, 사회적 고립 상태에 빠진 이는 8.2%(45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영국 못지않게 고독을 앓는 이가 많은 셈이다. 둘 모두를 겪는 사람은 전체의 3.7%(205명)였다.

고령자일수록 외로움 문제가 더 크다는 점도 드러났다. 20대 외로움 경험군은 7.8%에 불과했지만, 연령대가 높을수록 그 비율이 늘어 70대는 25.7%에 달했다. 사회적 고립 역시 같은 경향을 보였다. 의지할 사람이 없거나 사회적 만남을 잘 갖지 못하는 70대 비율은 각각 21.8%, 39.5%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연구 책임자인 홍진표 교수는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외로움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하경

실제 외로움 문제는 단순히 감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 중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비율은 각각 31%, 22%로 조사됐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의 해당 유병률이 각각 5%와 8%인 걸 감안하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외로움까지 느끼는 사람들의 우울증 유병률은 무려 70%에 달했다. 연구진은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흡연이나 알코올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학력이 낮을수록, 직업이 불안할수록, 별거나 사별·이혼을 한 사람일수록 외로움을 호소하는 경향도 강했다.

전문가들은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사회의 디지털화도 있다”고 말했다. 이제 살면서 생긴 궁금증을 사람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해결하다 보니 사회적 교류가 줄고, 그만큼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외로움을 방치하면 마음의 병이 될 수 있으니 개인도 노력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문화센터나 온라인 동호회에 나가는 등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가족이나 친구와도 자주 연락하는 노력도 외로움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