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오른쪽)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교수가 3일 본지 의학토크쇼 ‘명의의 전당’에 출연해 간(肝) 이식 수술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간 이식 분야 권위자인 이 교수는 “간 이식 수술 10년 후 장기 생존율이 85%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오!건강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에서 간(肝) 이식 수술을 가장 많이 한 외과 의사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이승규 교수(간이식·간담도외과)는 지금까지 간 이식을 8500여 건 집도했다. 수술 생존율이 98%에 10년 후 장기 생존율도 85%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과다. 이승규 교수가 한 해 이룬 생체 간 이식이 미국 전체에서 이뤄진 건수보다 많다. 이 교수 덕분에 이식밖에 살길이 없는 수많은 말기 간 질환 환자가 생명을 이어갔다. 간 이식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승규 교수는 3일 본지 고품격 의학 토크쇼 ‘명의의 전당’에 출연해 간 질환 환자들의 생명줄을 이어준 경험을 하나씩 풀어냈다. 간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지만, 재생력 역시 가장 강해 절반을 넘게 잘라내도 1년이면 본래 크기를 회복한다. 이 교수가 1994년 국내 최초로 성공한 생체 간 이식은 이런 간의 특성을 이용해 산 사람의 간 절반을 기증받아 말기 간 질환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다. 이 교수는 “간을 기증하는 뇌사자 공여 사례가 1년에 450건이라면, 간 이식이 필요한 환자는 4000~5000명에 달했다”며 “생체 간 이식이 없을 때는 90%가 수술을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승규 교수의 수술팀은 이 밖에 기증자의 간을 절반 뗄 때 최대 문제였던 간 혈관 분할을 인공 혈관으로 해결한 ‘변형 우엽 간 이식’, 두 사람의 간을 한 환자에게 넣어주는 ‘2대1 간 이식’, 혈액형이 맞지 않아도 이식이 가능한 ‘ABO 혈액 부적합 간 이식’ 등 생체 간 이식 분야 세계 최초 기록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래픽=송윤혜

특히 2대1 간 이식은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기증자의 간 크기가 작아서 한 사람의 기증분으로는 간 이식이 불가능할 때, 두 사람에게서 간을 절반씩 떼어내 한 환자에게 이식하는 방법을 고안했기 때문이다. 가령 이식에 기증자의 간 50%가 필요하다면, 간 질환 환자의 동생이 25%, 아들이 25% 간을 내서 이식을 하는 식이다.

다른 두 사람의 간을 한 사람에게 이식하더라도 면역 체계에는 큰 저항을 일으키지 않는다. 간은 상대적으로 타인의 장기를 받아들이는 데 무딘 기관이기 때문이다. 설사 혈액형이 다른 두 개의 간이 들어오더라도 이식받는 환자의 면역 체계는 두 간을 같은 간으로 받아들인다. 각자 생산하는 간 효소나 담즙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간을 이식해도 면역학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 이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에게 이식되는 전체 간의 양(Volume)이다. 이 교수가 고안해 낸 2:1 간 이식은 그만큼 창의적이면서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이 교수가 이 성공 사례를 간 이식 학회에서 발표하자, 이식 학계는 놀라운 결과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비판도 나왔다. 간 기증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두 명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실상은 되레 더 적은 간 절제로 간 기증자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었기에 결국 학계는 이 방법을 받아들였다.

2대1 간 이식을 하려면 간 떼는 수술실 2개와 받아서 이식하는 수술실 등 수술실 총 3개가 동시에 열리고, 의료진도 세 팀이 있어야 하기에 현재는 전 세계에서 서울아산병원만이 할 수 있다. 덕분에 서울아산병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간 이식을 하고 있다. 매년 해외 의사 100여 명이 기술 연수를 온다. 우리에게 선진 의술을 가르쳤던 미네소타대 병원은 2016년 의료진 30여 명을 이승규 교수팀에 보내 생체 간 이식을 배워 갔다. 1950년대에 한국 의사 70여 명을 미국에 데리고 가서 의술을 가르쳐준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이젠 역전된 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간 이식을 집도했던 미국 외과 의사도 이승규 교수에게 한 수 배우고 가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처음 2대1 생체 간 이식 수술을 허락했던 환자를 떠올리며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않으면 저희가 발전이 없다”며 “위대한 환자가 위대한 의술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때(2000년) 수술받은 그분은 지금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