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목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분과 석좌교수가 17일 본지 의학토크쇼 ‘명의의 전당’에 출연해 식도암 수술 경험을 말하고 있다. 심 교수는 “식도암 수술의 표준을 바꿀 새로운 치료법이 곧 완성된다”고 했다. /오!건강

심영목 삼성서울병원 폐식도외과분과 석좌교수는 한국 식도암 수술의 혁신가로 불린다. 심 교수는 지금껏 3000건이 넘는 식도암 수술을 집도하며 식도암 수술 후 사망률을 1%까지 낮췄다. 수술받은 환자의 5년 생존율은 60%에 달한다. 국내 폐암 5년 생존율이 30%까지 높아지며 17%인 미국보다 훨씬 앞서게 만든 주역이다. 사망 선고와도 같았던 식도암을 치료할 수 있는 질환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심영목 교수는 17일 본지 고품격 의학 토크쇼 ‘명의의 전당’에 출연해 식도암 수술을 한국에 대중화한 경험을 풀어냈다. 심 교수는 국내에서 식도암 수술의 개념조차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을 때, 식도암 수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식도암 수술 후 사망률은 30%에 달했다. 1980년대 후반 심 교수는 수술 사망률을 5%까지 낮춘 일본 논문을 접하고, 병원 의료진을 설득해 식도암 수술을 시작했다. 심 교수는 “당시 흉부외과에선 심장 수술 인기가 높아 식도암은 제대로 된 수술을 참관하기도 쉽지 않았다”면서도 “원자력병원 병실에 식도암 환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식도암 수술이 필요하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심 교수는 90년대 후반 삼성서울병원 교수로 부임하며 아예 폐와 식도만 전문으로 치료하는 ‘폐식도외과’를 조직했다. 대부분의 국내 병원은 심장과 폐, 대동맥과 식도 등을 모두 합쳐 흉부외과에서 진료한다. 하지만 심 교수 주도하에 삼성서울병원은 흉부외과를 ‘심장외과’와 ‘폐식도외과’로 나눴다. 심 교수는 “미국에서 흉부외과를 ‘흉부’와 ‘심혈관’으로 나눠서 표기한다는 점을 반영해 세분화한 것”이라며 “일본에는 식도외과가 따로 있는 곳도 많다”고 했다.

식도암 환자는 전체 암 환자의 1%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치료가 어려워 생존율이 낮았다. 2000년에만 해도 식도암의 5년 생존율은 15.7%에 그쳤다. 하지만 심 교수의 도전을 시작으로 식도암 수술이 대중화하면서 2020년 식도암 5년 생존율은 42.2%로 폐암보다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식도암 수술은 암 수술 중에서도 복잡하고 수술 난도가 높다. 식도에 있는 암을 제거하려고 식도를 절제하면, 다시 이어줘야 한다. 원래 길이보다 2mm만 모자라도 양옆으로 음식이 새기 때문에 수술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잘라낸 식도의 기능을 대신하려면 장을 이용한다. 위를 끌어올려 목까지 오게 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슴과 배를 모두 절개해야 하는 대규모 수술이 된다. 인공 식도도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심 교수는 “아주 작은 규모의 식도암 수술을 할 때도 배와 가슴을 모두 열어야 하고, 암 위치가 위쪽에 있으면 목까지 절개해야 한다”며 “결국 배 속에 있는 모든 장기를 다룰 수 있어야 식도암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심 교수는 식도암 수술의 표준을 바꿀 새로운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암 종양이 점막 하층까지 침범한 경우 점막까지의 종양은 내시경 절제로 제거하고, 더 깊은 부분은 항암 방사선으로 치료하자는 것이다. 식도를 잘라내지 않는 치료법이다. 6년간 이 연구를 진행해 3상을 마쳤고, 앞으로 최소 3년간 환자 생존율을 지켜봐야 한다. 심 교수는 “이렇게 새로운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며 “식도를 잘라내는 방식을 쓰면 거의 100% 음식이 역류하는 현상이 생겨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고 했다.

심 교수는 폐암 수술 분야에서도 대가로 꼽힌다. 심 교수는 젊은 시절 식도암과 마찬가지로 폐암 수술도 제대로 참관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단도 정확하지 않은 시절이라 수술대에서 환자의 상태를 보고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심 교수는 “종양을 제거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수술장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떼어 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술을 했다”며 “그렇게 폐암 수술법을 체득했고, 지금까지 수술 중에 사망한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심 교수는 식도가 아파 30년간 물 같은 것만 먹고 산 환자를 회상했다. 수술을 받고 사과를 씹어 식도로 넘기는 순간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심 교수는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며 “실력 있는 식도 전문가가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