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열리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얼마나 늙어가는지를 알게 된다고 흔히들 말한다. 40~50대까지만 해도 별 차이가 없어 보지만, 70세만 돼도 천차만별이 된다. 같은 동기인데도 ‘80세 노인’이 앉아 있기도 하고, ‘60세 청년’이 서 있다는 것이다. 60대 후반부터 노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인데, 그럼 어떤 이는 빨리 늙고, 누구는 천천히 늙어 활기찬 인생을 사는가.
원장원(가정의학과 교수) 경희대 노인노쇠연구센터장은 지난 19일 열린 한국헬시에이징학회에서 ‘한국인은 어떻게 늙어가는가’에 대해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원장원 교수는 2016년부터 전국 10개 병원을 중심으로 노인을 대상으로 노쇠 진행도와 그에 대한 영향 요인을 분석하는 노쇠 추적 조사(코호트) 결과를 중심으로, 어떤 사람이 빨리 늙는지에 대한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당초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동반 식사’를 했다가, 2년 후 ‘혼밥’으로 바뀐 노인들은 줄곧 ‘동반 식사’ 한 노인들에 비해 노쇠 발생 위험이 61% 더 높았다. 혼자 식사하다 보면, 영양 부실 식사를 하게 되고,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도 높아지기에 노쇠가 빨리 오게 된다. 원 교수는 혼자 살게 되더라도 밥은 가능한 한 여럿이 같이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내가 없는 남성이 노쇠가 빨리 왔고, 여성은 남편 없이 혼자 살 경우에 노쇠가 천천히 왔다. 남성에게 아내는 노년 삶에 도움이 되고, 여성은 남편이 노년 삶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해석이다. 자립도 높아진 요즘 노년층에게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원 교수는 전했다.
자녀와 손주를 자주 보는 것이 노쇠 예방에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손주와 자주 어울리는 노인이 노쇠가 가장 적었는데, 손주를 3개월에 한 번 이상 만나는 노인은 성공적인 노화를 할 확률이 63% 높았다. 반면 아내가 없는 홀아비는 손주들이 잘 찾아오지 않아, 노쇠 발생에 위험했다. 대개 손주들이 할머니를 더 찾기 때문이다.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것은 자녀의 잦은 방문뿐이고, 배우자와 사는 것이나 자녀에게 용돈 받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노쇠를 막으려면, 만성질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신체 활동을 늘려서 근육을 지키며, 사회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고, 종교 활동을 하는 게 좋다. 알부민(단백질) 농도와 혈중 고밀도지단백(HDL) 콜레스테롤을 높게 유지하는 것도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된다.
걸음 속도를 놓고 보면 현재의 75세는 10년 전 65세와 같다. 갈수록 노인의 체력이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의 평균수명(84세)은 계속 크게 늘어나는 것에 비해, 장애 없이 살아가는 기간인 건강수명(73세)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의 노인은 과거의 노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장애를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85세가 되면 장애 발생의 원인이 뇌졸중이나 치매보다 노쇠인 경우가 더 많다. 일본은 노쇠가 암, 심장병에 이어 사망 원인 3위다.
원 교수는 “노쇠 직전 단계에서 노쇠 예방 활동을 했을 때, 절반가량이 2년 만에 노쇠 없는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며 “평균수명과 건강수명 격차를 줄이는 노쇠 예방 활동이 초고령사회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최대 건강 이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