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뇌 손상을 입은 환자의 뇌에 임플란트 시술을 한 모습. 뇌에 꽂은 임플란트가 뇌 중심을 자극한다./연구팀 제공

머리를 다친 뒤 뇌 손상을 경험한 환자들이 뇌에 전극을 심고 상태가 좋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외상성 뇌 손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뇌 임플란트 시술 효과를 확인한 첫 임상 연구다.

미 스탠포드대와 코넬대 의대 등 공동연구팀은 심각한 외상성 뇌 손상으로 인지 장애가 생긴 환자가 뇌 임플란트 시술을 통해 정상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나아졌다고 4일(현지 시각) 밝혔다. 외상성 뇌 손상은 미국에서만 500만 명 이상이 영향을 받을 정도로 많다. 대부분 자연적으로 회복되지만 뇌 손상 정도가 심각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후유증을 앓게 된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외상성 뇌 손상으로 뇌의 네트워크가 끊길 수 있다는 가설에 주목했다. 뇌는 뉴런을 통해 연결돼 각 부분이 보내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지만, 뇌가 충격 등을 받아 손상되면 이러한 연결이 끊긴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뇌 깊은 곳에 있는 ‘시상(thalamus)’이 이러한 네트워크를 관장하고, 시상 중에서도 ‘중추 외측핵’이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곳에 전극을 꽂아 작은 전기 펄스를 정기적으로 방출하면 뉴런들이 스스로 신호를 방출하도록 유도해 뇌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심각한 외상성 뇌 손상 후 2년 이상 인지 장애가 지속된 5명의 참가자를 모집했다. 22세에서 60세 사이 참가자들은 3년에서 18년까지 인지 장애가 지속되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연구팀으로부터 뇌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연구팀은 중앙 외측핵 위치가 사람마다 다른 만큼 정확한 영역에 전극을 꽂기 위해 뇌의 가상 모델을 만들어 수술을 진행했다.

연구 참가자들은 2주간의 최적화 단계를 거친 뒤, 하루 12시간씩 기기를 켜고 90일을 생활했다. 이들은 뒤섞여 있는 문자와 숫자들을 서로 연결하는 등 일정한 테스트를 받았는데, 치료 기간이 끝날 무렵 참가자들의 시험 속도는 평균 32% 향상됐다. 연구팀이 목표로 한 10%를 크게 상회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책 읽기, TV쇼 보기, 비디오 게임 하기, 숙제 끝내기 등 이전에 불가능했던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연구 막바지에 참가자들 중 절반의 임플란트 기기를 무작위로 꺼 비교 실험을 하려 했지만, 이를 거절하는 사례가 생기기도 했다. 기기 전원을 끈 한 명은 테스트에서 다른 참가자보다 속도가 34% 느려졌다. 연구팀은 “우리의 목표는 이를 치료법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이번 연구 결과는 모든 노력을 다하기에 충분한 신호를 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