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는 인간을 심층적・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위대한 인간도 갖고 있는 선과 악, 밝음과 어두움, 페르소나(가면)와 그림자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히틀러와 같은 악인도 왜 선하고 긍정적인 모습이 없었겠는가. 링컨과 같은 선인도 왜 악하고 부정적인 모습이 없었겠는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다큐멘터리로 소개한 '건국전쟁'이 개봉 10일만에 18만명을 돌파, 예상밖 흥행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54년 미국 뉴욕 카퍼레이드 장면 /SBS 뉴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을 보면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이를 반대하는 의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더러운 거래’의 어두운 모습을 그렸다.

그에게 첫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영화 ‘쉰들러리스트‘는 수백만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살해하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 중에서도 비록 돈을 벌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자를 밝히는 장사꾼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수용소에서 탈출케 해 목숨을 살리는 천사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할리우드 영화가 지난 1백여년간 세계 콘텐츠 시장을 석권하는 이유는 인간의 모습을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인간에 내재된 선(善)과 사랑,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극적으로 묘사해 궁극적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스토리텔링의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스토리텔링 기술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이끄는 유대계 미국인들의 조상들이 수천년간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며 겪은 고난, 그리고 흔히 구약성경으로 부르는 그들의 신앙서, 믿음, 교육 등에서 체득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고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깨달음에서 발전돼 왔다고 생각된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심으로 참회하면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된다. 새 세상을 만나고 새 인생을 살아간다.’

이런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 그리고 유연한 사고가 지구상 1500만명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21세기 IT시대에서도 전 세계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거의 전 분야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스티븐 스필버그가 2012년 만든 영화 ‘링컨’.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이라는 선(善)을 위해 의원들을 회유하고 협박하는 ‘더러운 거래’를 벌이는 몇 개월의 상황을 다룬 것이다. /영화 장면 캡처

그들의 제1의 영웅인 다윗왕(King David)이 그 많은 선행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부하장군을 사실상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이를 본 자식들이 근친상간·살인, 심지어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내쫓는 패륜과 치욕의 역사를 유대인들은 그대로 후세에 가르친다.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전수받은 모세는 성격이 급하고 거칠어 이집트인을 살해하는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결국 유대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만 정작 그는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 모습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만난 유대인 커뮤니티 리더는 “치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후세가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교육시킨다. 또한 그런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유대인들의 최고 로울 모델인 이유는 그들이 진심으로 참회했을 뿐 아니라, 잘못에 비해 (유대민족을 위해) 잘한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후세가 본받아야 할 영웅이 너무 많다.

이승만과 김구는 나라를 이끄는 노선이 서로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건국의 아버지다. /서울신문

#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불과 수십년전 지구상 최빈곤국에서 21세기 지금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를 만들었지만 정작 그 시대를 이끈 인물중 존경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김우중 등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전세계가 열광한 ‘기생충’, ‘오징어게임’도 한국 사회의 굴절된 부정적 모습에 대한 가감없는 표현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한강의 기적’을 이끈 인물이나 상황에 대한 영화・드라마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서울의 봄’, ‘택시운전사’, ‘남산의 부장들’, ‘1987′같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자 부정적 역사만 보여주는 영화들뿐이다. 이런 자학적인 사회관이 결국 우리 스스로 ‘헬조선’, 자살률 1위 국가를 만드는데 기여했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 와중에 최근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나와 작지만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접하고 반가웠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데 그의 역할은 없었을까.

이 대통령과 관련해선 현역 기자 시절 만난 외국인들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20여년전 만난 인도 최대통신사(PTI) 간부는 자기네 건국 지도자 간디나 네루보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훨씬 높이 평가했다.

“1947년 독립할 때 인도의 국력이나 잠재력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었어요. 제3세계의 맹주였지. 한국이 우리를 추월하고 이렇게 발전하게 된 이유는 이승만・박정희란 지도자 덕분이죠. 이승만은 미국과 손잡고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노선을 추구했고,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긴 했지만 과감한 외자유치, 기업육성, 수출지향정책 등을 통해 산업화의 기반을 잘 닦았습니다. 첫단추를 잘 끼운 셈이죠.

반면 네루는 서방세계와는 담을 쌓고 평등, 자급자족, 폐쇄형 사회주의 체제로 갔죠. 그리고 그는 훗날 딸・손자까지 총리를 만드는 인도의 ‘케네디 집안’만 만들었을 뿐이죠. 나는 그를 증오한답니다(I hate them).”

두차례 걸쳐 말레이시아를 24년간 통치한 마하티르 총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개발도상국을 이끌지만 개도국을 이끌다보면 손을 더럽히지 않을 수 없어요. 한국은 건국 초기에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장군을 지도자로 모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더러운 일들을) 앞장서 처리했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들의 풍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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