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말기 신장 질환을 앓는 환자가 유전자 교정 기술을 적용한 돼지의 신장을 이식받았다. 이는 살아있는 인간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한 첫 사례다.

지난 16일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소속 간호사가 환자에게 이식할 돼지 신장을 옮기고 있는 모습. 이 신장은 면역 거부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전자 교정 과정을 거쳤다.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21일(현지 시각) 미국 바이오벤처 e제네시스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만성 신장 질환자인 리차드 슬레이먼(62)에게 돼지 신장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수술은 지난 16일에 이뤄졌다. 카와이 타츠오 박사와 나헬 엘리아스 박사가 이끄는 의료진이 수술을 담당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특별 승인을 받아 진행된 이번 수술은 e제네시스가 제공한 유전자 교정 돼지 신장을 사용했다.

슬레이먼은 10년 넘게 신장 질환을 앓아온 환자였다. 투석을 받다가 2018년 인간의 신장을 한 차례 이식받았지만, 신장 기능이 떨어져 또다른 이식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장기 기증자를 무작정 기다리기엔 슬레이먼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의료진은 돼지 신장 이식 수술을 계획하고 FDA에 ‘동정적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 1년을 기다린 끝에 수술을 개시할 수 있었다. 의료진은 “슬레이먼이 4시간 수술을 잘 이겨냈으며, 곧 병원에서 퇴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수술에 앞서 유전자 교정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환자의 면역 체계가 이식된 장기를 공격할 위험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e제네시스는 장기 공격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 일부 유전자를 제거하고 다른 유전자를 삽입하는 등 69번의 유전자 교정 과정을 거쳤다.

e제네시스는 지난해 10월 하버드의대 연구팀과 함께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원숭이의 장기 생존 사례를 네이처 저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원숭이가 최장 758일까지 생존했다고 보고했다. 이 연구에서 사용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 기술은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사용됐다. 이 기술은 유전 질환 치료와 품종 개량에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돼지 신장을 뇌사자에게 이식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살아있는 환자에게 이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2년에는 메릴랜드대 메디컬센터가 유전자 교정 돼지 심장을 환자에게 이식했으나 환자는 두 달 후 사망했다.

그래픽=이지원

지난해에는 유전자를 조작한 돼지 심장을 심장질환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이 세계 두 번째로 성공했다. 2022년 1월 세계 최초로 돼지 심장 이식 수술에 성공한 메릴랜드 의대 연구진이 다시 한 번 성과를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