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전경./조선일보 DB

서울대병원은 올해 1월부터 불면증 환자에게 약 대신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치료제가 국내에서 정식 처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첫 환자는 40대 직장인 A씨로, 5년 전부터 직장 스트레스와 가족 문제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2년간 수면제에 의존했지만 불면증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불면증 치료용 모바일 앱(App) ‘솜즈’ 사용 2개월이 처방됐다.

이 앱을 통해 A씨는 매일 수면 일기를 작성했고, 주간 단위로 자신에게 맞는 수면 시간(누워 있는 시간)도 처방받았다. 접근성과 피드백이 뛰어난 앱을 이용해 올바른 수면 습관을 들이고, 수면 관련 잘못된 생각을 교정(인지 치료)하는 방식으로 불면증을 치료한 것이다.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10명 정도 처방이 이뤄졌는데, 전반적으로 수면 효율이 늘고 주관적인 만족도 역시 높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처럼 디지털 수단으로 건강과 질병을 관리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불면증 치료용뿐 아니라 체중이나 혈당, 혈압 등을 측정·관리하는 앱과 착용형(웨어러블) 기기가 등장하며 인기를 끌고, 정신건강을 진단해주는 모바일 앱도 대거 출시되는 등 그야말로 디지털 헬스케어 전성시대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으로 헬스케어 관련 앱만 세계적으로 35만개 이상이다.

그래픽=김현국

요즘 국내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디지털 치료제는 팔뚝에 붙이는 패치 형태의 연속 혈당 측정기(CGM)와 연동 앱을 이용한 혈당 관리법이다. 웨어러블(착용형) 의료 기기로 피부(주로 위 팔뚝 뒤)에 붙이면 패치에 달린 미세 침 센서가 실시간으로 24시간 내내 혈당을 잰다. 관련 앱을 켠 스마트폰을 패치에 갖다 대면 현재 혈당 수치와 혈당 변화 추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람마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혈당 반응이 다른 만큼, 무엇을 먹을 때 혈당이 많이 오르는지를 빨리 알게 되면서 효율적인 혈당 관리가 가능하다. 고혈당은 비만의 주범인 만큼 20~30대 사이에선 다이어트 수단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의정부을지대학교병원 신경과 박상일 교수가 47국 7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연구를 종합 분석해 최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모바일 앱 등 정보 통신 기술을 활용해 당뇨를 관리했을 때 혈당은 5~7%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박 교수는 “다양한 정보 통신 기술 개입이 만성질환 관리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혈압도 24시간 실시간 관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갤럭시 워치’나 ‘애플 워치’ 같은 스마트 워치 역시 혈압 측정 기능이 있지만 의료 데이터로 활용될 정도의 정확도를 가지진 못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기업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반지 형태의 연속 혈압 측정 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임상 유효성과 안전성을 인정받고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건강보험 등재 여부를 심사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건강관리가 중요한 노인층의 디지털 헬스케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지적된다. 실제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령층의 절반 이상은 스마트폰 앱을 설치·삭제하지 못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가정의학과 이혜진 교수 연구팀이 지난 2022년 만 65~78세 노인 505명을 조사한 데 따르면, 모두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만 63.2%(319명)는 ‘스스로 앱을 설치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김광일 교수는 “고령자를 위한 디지털 기술 개발이 좀 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