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1893~1983년)는 단순하면서 기묘한 기호와 천진난만하고 유쾌한 도형을 창조했다. 미로를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평하지만, 그림은 소박한 색채와 형태를 담았다.
그가 서른두 살에 그린 <세계의 탄생>은 난자와 정자 생식의 세상을 담았다. 그림에는 정자로 연상되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꼬리 달린 구형이 있고, 난자의 변형으로 보이는 삼각형 도형이 있다. 왼쪽 하단에 있는 도형은 아이가 기어가는 형상을 띤다. 탄생의 상징이다. 미로는 이를 ‘일종의 창세기’라고 했다.
생식의학은 난자와 정자를 몸 밖에서 인공적으로 조합시켜도 똑같은 생명 탄생이 이뤄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시험관 아기의 탄생이다. 이후 난자 안에 정자를 직접 찔러 넣어 수정시키는 생식술이 보편화됐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시험관 아기 시술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배아 선별을 돕는 의료벤처 카이 헬스 이혜준(산부인과 전문의) 대표는 “인공 수정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기 전에 인공지능이 배아 모양을 평가하여 나중에 태아로 잘 자랄 수 있는 것을 골라준다”며 “그렇게 하여 임신에 성공할 배아를 고르는 확률이 약 20% 올라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인공수정에 적용할 정자도 AI가 활동성과 모양새를 평가하여 튼실한 것을 골라주는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AI가 인간 탄생의 시작을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결혼 나이가 점점 늦어지면서 난임 부부가 늘고 있다. 난임 진단자는 연간 24만명이다(2022년 기준). 여성 난임 진단자는 4년 전에 비해 103%, 남성은 111% 증가했다. 출산율 증가에 그나마 보탬을 준 게 아이 낳고 싶어 하는 난임 부부에 대한 난임 시술이었다. 한 해 14만여 명이 받았고, 한 사람당 184만원이 지원됐다. 이제는 50대 여성도 시험관 아기로 임신하여 출산할 정도로 생식술이 발달했다. 인공지능 의학이 건강한 미래 아기도 찾아준다. 미로의 <세계의 탄생>은 한국의 가임 부부 안방에 걸려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