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저서 사인회에 참석한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 /뉴스1

# 손웅정씨의 아동학대 혐의 사건을 보면서 문득 ‘응답하라 1988′ 드라마가 생각났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고 독재에서 민주국가로 변화하는 시점에 우리네 사회상을 리얼하게 그려 많은 공감과 추억을 불러일으킨 드라마다.

2015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 1980년대 우리 사회를 관통했던 가족·이웃·학교·공동체간의 정(情)과 신뢰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tvN, ‘응답하라 1988’ 공식홈페이지

그 시대에는 집안에 어른이 있었고, 동네 이웃이 있었으며,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그때는 사람들 마음속에 정(情)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으며, 공동체적 가치 규범과 양심(良心)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OECD 국가중 자살율 1위 국가가 된 지 20년이 넘었다. 고소·고발은 오래전부터 연평균 50여 만 건을 넘어 이웃 일본과 비교하면 40배가 넘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이것이 지난 30여년 진행된 민주화·세계화·선진화 그리고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든 결과인가.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라는 말이 있었다. 권위주의적 의미가 강하지만 자식의 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에 대한 존중과 기대도 포함된 말이다.

성서에 ‘어린이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마태 18:31)’고 했지만, 또한 ‘어린이 마음속에 미련함이 있어 징계해서 쫓아내야 한다(잠언 22:15, 29:15)’는 구절도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벌레나 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잔인성, 규범을 따르지 않으려는 심리, 어떡하든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이기심도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어린이나 학생의 인권은 강조하면서 어른과 스승의 정당한 권한과 권위마저 부정하고, 오히려 조롱이나 범죄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학생에게 한 엄한 한마디나 행동이 언제든지 폭력·가혹·학대 행위로 각색돼 협박의 대상이 되거나 금전적 흥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선생님의 실수나 분노, 탐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를 넘어서 아이들의 인권만 존중하는 사회가 되다 보니 초등학생 어린이가 교감 선생님에게 욕설을 하고 침을 뱉고 뺨까지 때리는 데도 그 어린이의 부모는 ‘부실지도’ ‘아동학대’라며 자기 자식을 감싸고 도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선생님이 자살해야만 무너지는 교권 상황이 잠시 회자되다 사라지는 사회가 됐다. 그래도 학생 인권조례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죽은 시인의 사회'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공부보다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려고 노력하다 학부모 등 주변으로부터 반발을 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교사가 '나쁜 교사'로 배척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장면 캡처

# 비단 손웅정씨 사건 등 교육 문제에서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 분야에서 양편으로 갈려 극단적인 대결을 보이고 있다. 부모 대 자식, 어른 대 청소년, 남과 여, 직장 상사와 부하, 경영자와 근로자 등 가족·이웃·연인·직장동료간 사적 문제까지 고소고발과 협박이 난무하고 있다.

2020년 검찰 접수 고소 사건은 총 68만 2천여건. 그 중 48%인 32만 6천여건이 반려되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초 범죄도 아닌 사건을 덮어씌운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하니 바야흐로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사회로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사회나 ‘굿 캅(good cop·좋은 경찰관)’과 ‘배드캅(bad cop·나쁜 경찰관)’이 있듯이 사람마다 천양지차다. 좋은 선생님도 있고 나쁜 선생님도 있으며, 좋은 부모도 있고 나쁜 부모도 있다.

그것의 판별 기준은 각자 그때 당시 상황, 사회적 통념, 그 사람의 성정(性情)에 달려 있다. 그것을 어떻게 어느 한편, 법 조항 한두개로 일도양단할 수 있는가.

지금 한국은 전세계의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놀라운 발전으로 산업화-민주화-정보화를 이룬 데 이어 노래, 드라마, 영화, 음식, 패션 등 문화 강국까지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에 정말 씁쓸한, 아니 절박한 문제가 숨어 있다. 다름 아니라 우리가 각자 어느 한편에 쏠리거나 눈이 멀어 정작 자신의 본디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난과 전쟁, 독재 시대 때도 존재했던 믿음과 정(情)을 어떻게 복원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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