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버스를 타고 무심히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다.

길거리 행인들의 모습, 상점 간판, 쇼윈도우, 빌딩의 멋진 현관… 그중에서도 불이 환히 켜진 식당이나 술집을 들여다보는 게 즐겁다.

안의 왁자지껄한 활기가 전해지면서 어느새 식욕이 발동하고, 한잔 생각이 간절해진다.

퇴근길 마주치는 대중식당들. /마음건강 길

‘할매 순대국/삼겹살’, ‘풍년 숯불갈비’, ‘한우파곱창/감자탕’, ‘양꼬치’…

이름도 정겨운 음식점 풍경들은 호기심을 잔뜩 자아내게 만든다.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가.

친구, 연인, 가족, 직장 동료 같은 사람들이 어울려 수다 떨며 얘기하는 모습들에서 바로 어제의 내 모습, 내 인생을 발견한다.

분주히 서빙하는 종업원과 계산대의 식당 주인을 보면 또 마음이 짠해진다. 그들의 수고와 수입에 각기 식솔과 가족, 가게의 명운이 걸려 있지 않은가.

‘큰 집 닭 한 마리 칼국수’란 간판이 큼지막하게 걸린 식당 안 손님 중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온다.

아들이 씩씩하게 닭 다리를 뜯고, 어머니가 국자로 건더기와 국물을 담아주는 모습…. 예전에는 이런 풍경이 일반적이었으나 요즘에는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문득 30여년 전 읽은 일본 단편 ‘우동 한 그릇’의 광경이 떠올랐다.

1950년대 가난한 일본 시골마을에서 우동 한그릇을 놓고 어머니와 두 아들이 나눠 먹는 이야기를 그린 단편 '우동 한그릇'은 일본과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셔터스톡

때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 복구에 힘쓰던 어려운 시절 섣달그믐날 밤. 북해도 시골 우동집에 남루한 옷차림의 어머니와 어린 두 아들이 쭈뼛쭈뼛 들어와 달랑 우동 한 그릇만 시켰다.

사정을 짐작한 주인장이 티 안 내고 반 인분의 우동을 더 담아 내주었고, 세 모자는 한 그릇의 우동을 나눠 먹으며 마음을 나눴다.…

그리고 14년이란 시간이 지나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어머니는 다시 우동집을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번에는 ‘당당히’ 세 그릇의 우동을 주문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은 그 시대적 배경이 됐던 때로부터 1950년대로부터 30년이 지난 1980년대 후반, 일본이 세계 경제 대국 2위로 호령하던 시절 출간돼 풍요로움 속에 잊혀진 정(情)에 대한 추억을 되살려 줘 일본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리고 이제 막 경제 발전이 본격화되던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 생생한 주변 이야기들이라 또한 큰 공감을 주었다.

그로부터 다시 30년의 세월이 지나고 세상은 또 많이 변했다. 그때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미 세상을 뜨거나 호호백발 노인들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바로 30년 전 일본처럼 풍요로움에 취한 채 정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때 그 풍경, 그때 그 사람들이 가진 마음은 요즘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퇴근길 버스 속에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대중식당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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