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자매가 모발 이식 진료실로 찾아왔다. 언니는 자기 모발을 동생에게 옮겨 주고 싶다고 했다. 동생은 백혈병 항암 치료 후유증으로 탈모가 심한 상태였다. 모발 이식은 뒤통수에 있는 모발을 앞으로 옮겨 심는 방식인데, 동생은 옮길 모발도 없었다. 보다못한 언니가 풍성한 자기 모발을 동생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간, 신장, 심장 등 웬만한 장기는 남의 것을 이식할 수 있다. 면역억제제가 발달해 가족이 아니어도 이식된다. 하지만 모발은 안 된다. 모발을 포함한 피부는 내부 장기보다 면역 거부반응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면역억제제를 세게 쓰면 부작용으로 탈모가 일어날 수도 있어서, 타인의 모발 이식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자매 간에는 모발 이식이 가능하지 싶었다. 동생은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언니의 골수를 이식받았다. 동생의 혈액에 돌아다니는 면역세포는 언니의 골수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언니 모발을 심어도 면역 거부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시험적으로 언니 모발 몇 가닥을 동생에게 이식해 봤다. 이식한 모발은 1년이 지나도 면역억제제 복용 없이 잘 자랐다. 언니 모발 수천 가닥을 동생에게 이식했고, 동생은 탈모 걱정에서 벗어났다. 이후 처지가 비슷한 딸에게 엄마의 모발을 이식한 적이 있다.

모발은 이처럼 이식받고 싶어 할 정도로 소중한 장기다. 모발 성장과 강화를 위해서는 단백질, 비타민, 녹차, 생선, 미네랄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잦은 염색이나 열처리는 모발을 손상할 수 있다. 건조한 두피에는 보습 성분이 포함된 샴푸를 쓰고, 기름진 두피에는 세정력이 좋은 샴푸를 써서 아침 저녁 하루 2회 감는 것이 건강한 모발과 두피를 위해 좋다.

/황성주 명지병원 모발센터장·피부과 임상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