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Flickr

시력이 나쁘면 안경을 쓰고, 치아가 부실하면 임플란트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난청은 좀 다르다. 보청기를 사용하면 일상에 큰 지장없이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쓰지 않는다. 보청기를 쓰면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 혹은 ‘더 늙어 보이는 듯’한 낙인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난청이 치매나 우울증, 노년기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나면 보청기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난청은 나이가 들면서 급격히 증가하는데, 65세 이상 어르신의 약 25%, 75세 이상은 50%가 난청이며, 85세 이상은 거의 대부분이 난청이다. 난청은 여러 해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이 난청을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 TV 볼륨을 점점 높이거나, 여러 사람과 대화할 때 말소리가 잘 안들리거나 목소리가 커지고, 어린이나 여성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졌다면 난청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노화성 난청은 인지 기능 저하와 치매 발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난청이 있으면 안들리는 소리를 억지로 들으려 온 신경을 집중한다. 즉 청각 처리 작업에 인지적 자원을 총동원하다 보니, 다른 인지적 작업에는 소홀해진다. 이런 과정이 장기간 지속되면 신경 변성과 뇌 위축이 가속화돼 치매 위험이 증가한다. 청력이 정상인 사람에 비해 경도 난청은 치매 발생 위험이 2배, 중등도 난청은 3배, 심도 난청은 5배 이상 증가한다.

그런데 반대로 난청이라는 요인을 제거하면 치매 발생이 다시 감소한다. 즉 소리를 다시 잘 들을 수 있게 되면 치매 위험도 줄어드는데, 치매 위험을 높이는 다른 요인들, 즉 흡연, 우울, 사회적 고립, 고혈압, 당뇨 등과 비교해봐도 청력 회복이 치매 감소 효과가 가장 크다. 한마디로 보청기가 치매 위험을 줄이는 일등 공신이다.

보청기는 귀로 들어오는 소리를 전기적으로 증폭시켜 전달한다. 과거에는 모든 소리를 같은 정도로 증폭시켰기 때문에 여러 소리 중에서 말소리만 구별해 듣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음역대 별로 필요한 만큼 소리를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해졌고, 소리를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왜곡도 크게 줄었으며, 소음을 제거하는 기술까지 더해져 적응이 훨씬 쉽다.

하지만 큰 맘 먹고 보청기를 했는데, 시끄럽기만 하고 잘 들리지 않아서 보청기를 쓰지 않는다는 경우도 간혹 있다. 보청기 착용에도 골든 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청력이 아주 크게 떨어진 뒤에 보청기를 시작하면 적응이 어려워 청력 재활이 불가능할 수 있다.

보청기는 이어폰과 많이 닮았다. 둘 다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쓰는 것이며, 적용되는 음향 기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보청기를 ‘난청인을 위한 이어폰’으로 생각하면, 보청기에 덧씌워진 낙인 효과를 지우고 좀 더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