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저속노화쌤이 잠은 건들지 말래.” “저속노화쌤이 동물성단백질 말고 식물성단백질 먹으래.” 잠을 줄이고 ‘갓생’ 살던 이들, 마라탕후루로 ‘욜로(YOLO)’하던 2030 청년들이 저속노화쌤의 조언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저속노화쌤은 건강하게 나이 들고 오래 사는 법, ‘저속노화’ 개념을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밈(meme)을 곁들여 친근하게 설명하는 정희원(40)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의 별명이다. 정 교수가 만든 엑스(X·옛 트위터) 저속노화 식단 커뮤니티에는 2만7400여명이 참여 중이다. 커뮤니티 참여자들은 자신의 식단을 공유하거나, 다른 이들을 위해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저속노화 식단 레시피를 공유한다.

정 교수의 저속노화 조언은 식단, 운동 등 생활습관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 정 교수는 ‘가속노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마인드셋(Mindset)’, 즉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동적인 도파민을 끝없이 채워 넣는 ‘꿀잼’을 좇기보다는 ‘노잼’으로 느껴지는 적극적인 방식들, 이를테면 독서와 명상, 운동 등으로 자기효능감을 얻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절간으로 가서 수도승처럼 생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무소유를 주장하지도 않아요. 사람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신체기능, 인지기능, 사회기능, 정서기능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풀소유되어야 해요. 돈도 많으면 좋아요. 문제는 사람들이 근시안적으로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지난 10월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정 교수는 자신을 ‘쾌락주의자’ ‘풀(Full)소유주의자’라고 칭하며 일각의 오해를 반박했다. 그가 설명하는 쾌락과 풀소유는 세간의 의미와는 다를 수 있지만, 점점 더 길어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관념이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

- '저속노화'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달라. "노화과학 가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지금 노화생물학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개념이다. 노화는 속도 개념인데 이게 쌓이면 내 몸에 고장을 만든다. 그 고장이 생물학적 나이를 의미한다. 숫자 나이와 생물학적인 나이는 미스매치가 있다. 생물학적 나이가 숫자 나이보다 많다는 것이 '가속 노화'를 경험했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 몸에 고장이 많아진다."

정 교수는 “그것이 나중에 만성 질환으로 나타나고 만성 질환이 축적되면 그 결과로 노쇠가 온다”면서 그 치명적 결과들을 설명했다. “노인성 질환들은 다 같이 오는데 치매도 오고, 그 결과로 ‘돌봄 요구’가 온다. 간병인을 쓰는 거다. 간병인 쓰는 기간은 ‘내가 젊어서부터 얼마나 노화를 많이 쌓았느냐’와 상관이 있다. 그리고 수명도 상관이 있다. 노화 속도와 노화 궤적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30%가 유전자, 70%는 생활 습관이다. 그 70%를 잘 관리하게 되면 건강하게 나이 들고 오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저속노화 식단법'은 어떤 원리로 노화를 늦추는 것인지 궁금하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이라는 의학저널이 있다. 여기서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식단과 관련된 연구들을 다 종합했다. 그렇게 종합을 해보니 결국 건강장수를 하기 위해서 먹어야 되는 건 뻔하다는 거다. 채소를 좀 더 많이 먹고, 식물성 위주로 식사를 하고, 고기를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적당한 정도의 지방을 섭취하고 콩을 많이 먹으라는 것이다. 이 정도의 자연스러운 식사를 하면 된다는 거다. 기전(機轉·일어나는 현상을 뜻하는 의학 용어)적으로 봤을 때는 노화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만성 질환이 생기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는 식단을 말하는 건데, 실제로 이런 식단을 영위하면 노화 속도가 느려진다는 증거들이 충분히 있다."

- 가속노화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는 수많은 요소들과 각 요소들의 연결고리를 이어서 그린 '가속노화 구조도'가 인상 깊었다. '각 입구(요소)의 과락(過落)만은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노화 속도와 관련되는 것은 식사, 운동, 스트레스, 삶의 지향점, 수단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한 가지만 현저하게 나빠지게 되면 나머지가 다 같이 나빠진다. 보통의 경우 사람들이 집착적으로 무언가를 더 잘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것보다는 가장 내가 챙기지 못하는 것들이 결국은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모든 요소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생활습관이 다 관리되어야 그 사람의 두뇌 상태 또는 심리적 판단력, 자제력이 유지된다. 이와 함께 충동성도 조절되고 스트레스 레벨도 줄어든다. 그러면 라이프스타일도 건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중 하나만 나빠져도 전부 나빠지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가속노화 악순환 요소 가운데 '쾌락 추구, 의사결정 실수'라고 적힌 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충동 조절이 안 된다는 것을 쉽게 표현한 거다. 편도체가 과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은 상태에서는 기본적으로 더 달고 더 기름지고 짠 음식,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된다. 술·담배도 더 당기고 스마트폰도 더 스크롤하고 싶어진다. 그게 사람 두뇌의 특징이다. 도파민을 더 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활습관을 개차반으로 만들면 결국에는 뇌구조가 더 나빠지게 되고, 마음 상태도 더 '마음 놓침' 상태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 나는 더 번뇌가 많은 상태, 욕심이 많은 상태로 바뀌게 된다."

- 그러나 그런 악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악순환을 최대한 만들면서 자기를 학대하는데, 그걸 '욜로'라고 착각하는 거다. 사실은 자기를 황폐화시키는 거다. 저는 이런 표현을 쓴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아는 '에고(ego)', 자신의 몸과 마음은 '셀프(self)'다.' 에고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그냥 들어주다 보니 굉장히 피상적인, 또는 수동적인 즐거움만 좇게 된다. 그런 것들이 자기를 더 학대하는 사이클을 만드는데도 계속 맹렬하게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거다. 그러면 당장은 도파민이 나오지만, 도파민도 결국 반대급부로 스트레스 호르몬을 만들어낸다. 도파민이 빠져나갈 때, 즉 즐거움이 없을 때는 결국 스트레스 호르몬만 남는다. 그러니까 도파민을 좇는 삶은 결국엔 화병을 만든다."

- 가속노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인생을 바라보는 생각과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대의 소비자본주의에서는 24시간 내내 최대한 많은 수동적인 도파민을 나에게 채워 넣는 것을 '위너'라고 생각한다. 1분 1초라도 즐거움이 없다면 '루저'가 된다는 포모(FOMO·소외공포증)에 시달린다. 이런 '마인드셋' 자체가 잘못된 거다. 사람의 보상체계 시스템은 더 많은 자극이 들어오게 되면 그 보상체계의 민감도를 낮춰버린다. 결국 내가 즐거운 정도는 한계가 있다. 반면 '노잼'이라고 생각되는 적극적인 활동들(작문, 독서, 운동,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자기효능감을 얻는 과정이 지속되면 실제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어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노잼'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 계속해서 '꿀잼'인 것들을 삶에 채워 넣으려는 생각이 강한데, 그러다 보면 결국은 화병이 나고 만성 스트레스가 나온다. 만성 스트레스가 나오면 말씀드린 것처럼 악순환이 된다. 삶에 대한 지향점, 생각을 바꿔야 한다."

- 스트레스가 악순환을 만든다면,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다스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최근에는 스마트워치로 스트레스를 측정하기도 하는데. "원래는 타액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레벨을 재야 하지만, 스마트워치에서 HRV(Heart Rate Variability·심박변이도검사) 같은 것을 사용해볼 수 있다. 그런데 자기의 마음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자신의 호흡을 바라본다든가, 산책 또는 운동을 한다든지 여러 일을 해볼 수 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호흡을 통한 마음챙김 명상이다. 운동을 하면서 명상하는 것도 좋아한다. 호흡에 집중하는 것은 지루하지 않다. 또 참장이라고 서서 하는 명상도 많이 한다. 앉아서 좌선을 하면 허리가 아프고 지겹다. 신체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비판하거나 해석하거나 하지 않고 온전히 경험하면서 가만히 걷는 것도 좋은 명상이 된다. 걸을 때 호흡에 집중하거나 주변의 자연환경, 경관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 수영을 할 때 호흡과 손에 닿는 물의 감각을 느끼는 것도 명상이 된다."

- 저속노화의 방법이 일종의 ‘수양’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즐거움을 버리고 절간에 들어가 면벽수도를 하라는 게 아니다. 저는 쾌락주의자다. 최대한 많은 양의 쾌락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굵고 길게’ 살아야 한다. 부작용 없이 순수하고 더 지속가능하게, 충분히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는 결국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는 거다. 저는 ‘풀소유주의자’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신체기능, 인지기능, 정서기능, 사회기능이 다 필요하다. 돈도 많을수록 좋다. 문제는 사람들이 근시안적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돈을 더 빨리 많이 벌고 싶으니 자기 돌봄과 관련된 신체·인지·정서기능을 파괴할 정도로 물질적 풍요에만 집중하는 거다. 혹은 스스로 기능을 파괴하는 줄도 모르고 수동적인 즐거움을 좇게 되면 결국 실제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은 더 작아지게 된다. 가속노화는 ‘가늘고 짧게’ 사는 거다. 내가 경험하는 즐거움의 양과 삶의 농밀한 정도가 떨어지는 상태에서 빨리 병을 앓게 되고 돌봄 요구를 겪기 때문에 빨리 죽는다. 제가 말씀드리는 풀소유는 다시 말하지만 ‘두껍고 길게’ 사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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