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악처로 소크라테스, 모차르트 그리고 톨스토이의 부인이 꼽힌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아는, 남편 톨스토이가 아내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82세 나이에 가출을 감행해 10일 만에 시골 역사에서 객사하는 바람에 악처로 등극했다.

도대체 얼마나 못된 성정을 가졌길래 세계적으로 추앙받던 큰 어른을 그렇게 만들었을까라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한 언론인이 쓴 ‘톨스토이의 가출’이란 책을 읽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소피아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가까웠던 시절의 톨스토이 부부

이 책은 CBS(기독교방송) 사장을 지낸 언론인 출신 고 이정식(1954~2024)씨가 최근 출간한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마니아였던 그는 러시아를 자주 가 현장을 직접 취재하면서 여러 권의 러시아 문학기행을 펴냈다. 이번 책은 지난 4년간 암투병하면서 혼신의 힘으로 쓴 책이다.

언론계 선후배 사이로 막역했던 나도 얼마 전 완독하고 대화를 나눴는데 그만 며칠 뒤 작고해 유작(遺作)이 되고 말았다. 참 인생은 허망하다….

책은 제목처럼 톨스토이의 가출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내 소피아의 학대에 못 견뎌 82세 어느 날 무작정 가출한 것은 사실(fact)이다. 그리고 그 갈등은 장장 30년간 지속된 것이며 말년에 가선 거의 불구대천지원수처럼 지냈다.

톨스토이의 젊은 시절을 보면 거대한 영지를 상속받은 귀족으로, 행실은 방탕하기 이를 데 없었다. 19살 대학을 중퇴하고 술과 도박, 여자 속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24살 때 군 하사관으로 카프카스 지역에 근무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 문학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자신의 문학 선배 투르게네프에게 거친 언사를 하고 결투를 신청하는 등 방약무인의 태도를 보였다.

34세 노총각 때 그는 16세나 어린 18세 소피아를 만나 적극적인 구애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여기까지는 해피엔딩. 문제는 자신의 과거 온갖 방탕한 사생활까지 다 기록해 놓은 일기를 그녀가 읽도록 한 것이다.

신부가 될 사람에게 자신의 비루한 과거를 고백하고 반성하겠다는 ‘선의(善意)’에서 한 것인데, 자신이 추앙하는 남자의 벌거벗은 모습을 본 소녀의 충격과 실망은 어떠했을까.

어쨌든 그녀는 결혼했다. 그리고 톨스토이가 내연관계라고 고백했던 농노의 아내를 지근거리에서 자주 보면서 분노와 의심, 불행감에 휩싸였다.

야스나야 폴랴나에 있는 톨스토이의 저택 /이정식의 러시아 문학여행

그럼에도 그녀는 결혼생활에 헌신, 13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방대한 영지의 관리도 했다. 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남편의 대작이 나오는 데 조력을 다 했다. 아내의 엄청난 조력이 없었으면 그런 책들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녀를 결정적으로 실망시킨 것은 톨스토이가 50세가 되면서 이른바 ‘무소유’를 주장하면서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럴 것을 좋아할 아내나 가족이 어디 있겠나,

톨스토이 본인 입장에선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 도덕적 신념의 실천이지만 아내나 가족 입장에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인간이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두 사람 사이는 금이 가고 나머지 30년간 결혼 생활은 증오로 얼룩진 막장 드라마였다.

자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질 수는 없다. 두 사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이해할 만하다.

야스나야 폴랴나 자신의 영지에 있는 톨스토이의 무덤 /셔터스톡

세상만사나 인간관계는 대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옳고 그름, 선과 악으로 선뜻 재단할 수 없다. 우리가 겪어온 인생사도 그렇지 않나.

다만 이것이냐, 저것이냐는 현실의 이원론(二元論)적 세계를 넘어 이를 통합하는 제3의 현명한 길은 없었나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아쉽게도 시대의 양심이자 현인 톨스토이도 그 해답을 주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

요즘처럼 횡행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사를 지켜보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언제쯤 내가 옳고 네가 그르고 식의 우(愚)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음이 힘들거나 이성적으로 해답이 안 나올 때 나는 명상을 한다.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해지며 좀 편안해진다.

내공이 깊은 명상가들은 명상을 오래 하다 보면 논리나 이성으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넓은 들’을 만나며 자유, 용서, 통찰,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그때 비로소 너와 나의 이분법적 사고는 소멸되고 ‘하나가 되는 상태(oneness)’가 되어 강물로, 바다로 나간다고 한다. 언제쯤 그런 체험을 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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