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59)씨는 10년 전부터 고혈압을 앓았다. 당시 머리가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고혈압 때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혈압약을 먹어도 머리가 가끔 아팠다. 최근 들어서는 밤마다 머리가 자주 아팠다.
최씨를 진료한 동네의원 내과 의사는 24시간 혈압 측정을 권유했다. 자는 동안 혈압 변화가 어떤지 알기 위해서다. 진단용으로 처방된 혈압 측정기는 손가락에 끼는 작은 반지였다. 최씨는 일상에서 착용하는 일반 반지와 별 차이가 없는 착용감으로 별 불편 없이 온종일 끼고 지내며 혈압을 측정할 수 있었다. 기존의 24시간 혈압 측정기는 부피가 큰 장비를 몸에 착용해야 했고, 팔뚝을 감싸는 혈압기 커프가 수시로 팔뚝을 조여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수면을 방해하는 요인이었다.
혈압 반지 착용 후 다음 날 최씨는 반지를 의사에게 제출했다. 그러자 의사 컴퓨터 모니터에 지난 하루 동안 기록된 혈압 변화가 그래프로 나왔다. 최씨는 밤사이 혈압이 크게 올랐던 것으로 나왔다. 이에 혈압약 처방이 변경되었고, 최씨는 두통 없이 밤에 편안하게 잠잘 수 있었다.
최씨가 낀 반지는 국내 의료 벤처 스카이랩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스마트 반지형 24시간 혈압 측정기 ‘카트 비피(BP) 프로’다. 반지를 끼고 있으면 5분마다 혈압이 측정되어 반지에 기록된다. 이를 하루 지나 빼서 분석기에 대면 24시간 혈압 기록이 나온다. 반지에서 특수한 빛(광용적 맥파)이 나와 손가락에 지나가는 혈관의 혈류를 미세하게 측정한다. 이를 혈압으로 환산하여 수치를 낸다. 임상 시험에서 스마트 반지로 잰 혈압 수치나 기존 커프형 연속 측정 혈압기로 잰 혈압 수치가 똑같았다. 커프 없이 혈압을 잴 수 있는 기술은 세계에서 유일하다.
24시간 혈압 측정이 필요한 환자는 주로 집과 진료실 혈압 차이가 큰 것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이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만 보면 혈압이 높아지는 백의 고혈압이나 반대로 집에서는 혈압이 높은데, 병원에서는 정상으로 나오는 ‘가면 고혈압’ 환자들이 측정 대상이다. 잠자는 동안 혈압 변화가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도 측정 대상이다.
최근 스마트 반지를 다수의 환자들에게 적용한 김규태 내과 전문의는 “환자들의 시간대별 혈압 변동을 쉽게 확인하여 맞춤형 혈압 관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스마트 반지를 통한 24시간 혈압 측정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며, 환자는 5000원 정도 부담하면 된다.
카트 비피는 맥박과 산소포화도도 측정된다. 최근 열린 유럽심장학회에서 반지형 혈압 측정기는 “수면 무호흡증 진단 및 모니터링에도 유용하다”며 “심장과 혈압 모니터링의 혁신 도구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