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0년 전 중국 주나라에서 사상가로 활약한 장자(莊子)는 평소 고요히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것이 삶의 기본이며, 그런 충실함을 통해 각자가 소임을 다하고 만사가 잘 된다고 역설했다. 그가 쓴 ‘무심의 공덕’은 이렇게 시작된다.
무심의 고요함으로
안정을 지키고
그윽한 적막에
작위(作爲)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천지자연의 기준이며 도덕적 본질이다.
그러나 세상은 늘 무엇을 하려는 유위(有爲·doing)의 마음으로 가득 차 시끄럽고 다툼이 끊이지 않으므로, 우리 모두 ‘텅 빈’ 무위(無爲·non-doing)의 마음으로 살아가자고 한다.
그래서 제왕이나 성인(聖人)도 그 경지에서 쉬는 것이다.
거기 쉬고 있으면 무심해지고
무심해지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서
충실해지고
충실하면 잘 다스려진다.
쉼을 통해 마음이 비워지면 어떤 상황에도 잘 대처할 수 있고, 의견이나 생각을 수용할 수 있게 되지만, 반대로 마음이 번잡하거나 꽉 차 있으면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요즘 고군분투(?)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생각났다. 그는 과연 무심한가. 모든 의견들을 잘 받아들이는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는가.
5년 전 조국 전 민정수석 일가의 입시부정비리를 다룰 때 윤석열 검찰총장에게선 분명히 ‘무심의 공덕’이 느껴졌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 ‘오직 법대로’라는 단순명쾌한 논리에 따른 행보에 대해 수하의 그 영리한 검사들도, 평소 검찰에 대해 떨떠름해하던 국민들도, 모두 힘을 합쳐 그를 지지했고 결국 본인도 생각지 않던 대통령까지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윤대통령의 마음은 그때 그 시절처럼 무심한가. 아니면 온갖 생각·감정·욕망으로 꽉 차 있는가.
또 무심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모든 것을 쉽게 응대하므로
잘 움직이고
잘 움직이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된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나라 사정을 보면 정반대다. 무엇 하나 시끄럽지 않은 것이 없으며, 사사건건 다투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그 단적인 예로 의대생 정원을 둘러싼 의료계와의 갈등을 들 수 있다. 장장 9개월이나 끌면서 지난 4월 총선 대패의 주요인이었으며,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데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더욱 그러한 것은 김건희 여사 문제다. 정치 9단 김대중·김영삼 시절 같았으면 벌써 끝났을 사건이 질질 끌어오면서 대통령의 위상 추락은 물론 같은 편끼리 집안싸움도 점입가경이다.
그리고 고요하면 작위가 없고
작위가 없으면 일을 맡은 자가 각기 책임을 다한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머릿속 계산에 빠져 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22일 윤대통령과 한동훈 대표 면담 사진이다.
사각 모서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윤대통령, 다른 한쪽에는 한 대표와 정진석 비서실장이 앉아 있는 모습인데, 얼핏 보면 윤대통령이 한대표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지시하는 듯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과거 나도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비서실장이나 수석은 못하고 비서관을 했지만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안다.
이 엄중한 시기에 두 사람의 만남과 관련된 자리 배치나 사진이 얼마나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다들 알 텐데 정무·홍보·의전비서관실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심지어 윤대통령의 동갑내기 친구이자 당대표·국회부의장·5선 의원을 지낸 정진석 실장조차도 한 대표 옆에 나란히 앉아 머리를 조아리고 무언가를 적고 있는 대목에서 난 약간의 절망감마저 느꼈다.
아마 윤대통령 마음속에는 많은 감정·생각이 교차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왜 다들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못살게 굴지?라며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무심의 공덕’을 조용히 읽고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