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게티이미지뱅크

일본에서는 혈액이 흐르지 않는 모세혈관, 즉 있어도 쓸모가 없는 모세혈관을 유령 또는 영어로 고스트(ghost) 혈관이라고 부른다. 유령 모세혈관을 줄여서 노화를 예방하고, 각종 질병 발생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의사가 많다. 국제 의학계가 유령 모세혈관 이론을 아직 정설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건강 칼럼, 의료 정보 유튜브, 의료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유령 모세혈관 관리가 새로운 건강법으로 전파되고 있다.

시작은 오사카대 미생물병 연구소 다카쿠라 노부유키(高倉 伸幸) 교수다. 그는 혈액종양내과 의사로 암 환자를 진료하면서, 효능이 좋은 항암제를 투여했는데도 치료 효과를 못 보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고, “항암제 문제가 아니라, 항암제가 전달되는 혈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을 갖고 혈관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서 혈액이 흐르지 않는 유령 모세혈관이 있고, 그것이 질병 발생에 기여한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됐다. 이후 그는 일본 방송에 수차례 출연해서 유령 모세혈관 바람을 일으켰다. 그의 이론을 담은 서적은 최근 국내서도 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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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혈관은 동맥에서 뿌려진 산소와 피를 세포에 전달하고, 세포서 피를 다시 걷어서 심장으로 되돌리는 정맥에 연결하는 미세혈관이다. 직경은 5마이크로미터로, 머리카락 10분의 1 정도로 가늘다. 산소를 집에 택배로 보낸다고 치면, 대동맥은 고속도로, 동맥은 큰길이고, 모세혈관은 집집마다 들어가는 골목길인 셈이다. 우리 몸속 혈관의 95~99%는 모세혈관이기에 전체 모세혈관 길이는 10만㎞쯤 된다. 지구를 두 바퀴 반 도는 거리다. 모세혈관 수는 40세부터 서서히 감소하여 60대에는 20대의 60% 정도 남는다.

다카쿠라 교수 이론에 따르면, 모세혈관 속 혈액은 혈관 내피세포로만 구성된 공간에서 흘러가는데, 혈관 바깥의 벽세포가 일그러지거나 벗겨지면, 혈액 흐름이 멈춘다. 즉 모세혈관이 있어도 혈액 흐름이 없는 유령 혈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유령 혈관이 많아지면, 세포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남는 혈액이 많아지고, 이는 결국 혈압 상승으로 이어져 각종 심혈관 질환 유발 요인이 된다. 뇌의 모세혈관이 대거 유령화되면 치매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 피부 노화는 빨라지고, 뼈가 연약해져 골다공증이 잘 생긴다. 모세혈관 속 백혈구도 세포로 가지 못하기에 면역력도 떨어진다.

모세혈관의 유령화를 쉽게 가늠하는 방법으로는 손톱 눌러 색깔 보기가 제시된다. 검지 손톱을 다른 손 검지와 엄지로 잡고 5초 동안 세게 누르면, 손톱에 피가 안 통해 색깔이 하얗게 변하는데, 검지와 엄지를 다시 뗐을 때 2~3초 안에 눌린 검지 손톱이 붉게 돌아오면 정상이고, 천천히 돌아오면 모세혈관 유령화를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령 모세혈관이 생기는 원인으로는 수면 부족, 과식, 운동 부족, 흡연, 과음, 탈수, 기름진 음식과 가공식품 과다 섭취, 몸을 덥히는 욕조 목욕 부족 등이 꼽힌다.

다카쿠라 교수는 혈액이 흐르지 않는 유령 모세혈관 발생을 줄이는 방법으로 혈액의 질을 좋게 하는 녹황색 채소와 등 푸른 생선 식사를 자주 하고, 혈관을 유연하게 하는 칼륨 섭취를 권한다<그래픽 참조>. 땀이 나는 수준의 운동을 가능한 한 매일 하여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 식사량을 80%로 줄여서, 과식을 막는다. 샤워보다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욕조 목욕을 권장한다. 발뒤꿈치를 들어올려 종아리 근육을 키우고, 스쿼트 등으로 하체 근육을 단련하여 혈류 순환량과 속도를 높이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