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을 보내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 본다. 어느덧 70을 바라보고 주변 친지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과연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죽는 게 가장 바람직할까.

새삼 ‘끝이 좋으면 다 좋아(All’s Well That Ends Well)’란 셰익스피어의 희극이 떠오른다.

새해 이틀전인 30일 오전 7시38분 제주 서귀포시 송악산에서 바라본 일출 모습. /마음건강 길

과거 이라크·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병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진한 동료애와 휴머니티를 체험했다는 글들을 본 적이 있다.

평소 소홀히 했던 친절, 배려, 삶의 기쁨, 고귀함 등이 그 경각의 상황 속에서 너무 절절하게 다가왔으며, 미움, 증오, 두려움보다 더 진한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간 앞에서 서로 커피를 타주고,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객쩍은 농담을 주고받고, 등을 두드려주며, 가족사진을 꺼내 자랑했다고 한다.

살아남은 병사들의 이런 회고담을 보면서 야만적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보여준 배려와 침착한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인간의 본성 중 선한 마음(이타심)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30여년 전 기자 시절 사형수, 그것도 극악무도한 이들의 궤적을 역추적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들 대부분은 진심으로 참회하고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을 하다 갔다. 그들이 한 악랄한 행동은 어떤 논리로도 용납될 수 없지만, 사람이 그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하 유대인 포로수용소 체험담으로 유명해진 정신신경과 의사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를 보면 그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도 천사처럼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

절대 기아의 상태에서도 동료를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는 ‘천사’도 있었고, 몰래 사비를 털어 수감자들에게 약을 사준 나치 교도소장도 있었다.

심지어 ‘가장 악마적인 사람’으로 불렸던 나치 의사는 전범으로 감옥살이하다 죽었는데, 감옥에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사와 같은 행동을 해 모든 수감자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참으로 인간은 변화무쌍한 존재로 누가 선인이고 악인이냐를 섣부르게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차원에서 요즘 우리네 현실처럼 서로를 악마라고 부르며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참 마음이 안타깝다.

자연은 최고의 화가다. 얼핏 보면 구름 위에서 산과 바다와 모래사장 풍경을 보는 듯하나 사실은 동틀 때 찍은 하늘 광경이다. /마음건강 길

만약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적어도 선악이나 시시비비, 이념이나 명분에 사로잡히고 싶지는 않다. 대신 내 주변의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진솔하게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평소 온갖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때로 내게 실망을 주거나, 반대로 내가 실망을 준 자식들에게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친지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좀 의연하게 가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전에 되도록 많은 시간을, 전쟁터의 그 병사들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고, 초콜릿을 나눠 먹고, 등을 두드려주고, 객쩍은 농담을 건네며, 가족사진을 꺼내 자랑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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