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 병상 규모의 서울 한 대학병원에는 현재 독감 인플루엔자, 코로나 19 등 호흡기 감염병 환자가 100명 정도 입원해 있다. 전체 병상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셈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많다. 소아과 병원마다 이른 아침부터 발열과 기침을 호소하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독감 증세 후유증으로 어지러워 못 걷겠다는 환자, 평소 지병인 심장 질환이 악화된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호흡기 감염병 환자들은 고령이거나, 당뇨병·고혈압 등 만성질환으로 회복이 느린 경우, 천식·만성 폐쇄성 폐질환 등으로 호흡기 감염이 중증으로 이어질 우려가 큰 환자들이다. 하지만 의정 사태 장기화로 입원 환자를 돌볼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여서, 입원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입원했더라도 신속한 처치가 힘들 수 있다.
◇코로나 이후 보건 의료 최대 위기
독감 인플루엔자 유행은 아직 정점이 오지 않았기에 앞으로 환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8월경 코로나19 감염이 속출했는데, 이들의 면역력은 4~5개월 지나면 감소한다. 이에 올해 1월 중하순부터는 코로나19 감염 환자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보건 의료 최대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 때 마스크 쓰기, 손 씻기, 사회적 거리 두기 같은 것들이 호흡기 감염병 확산 저지에 효과를 냈는데, 그것이 없어지면서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유행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코로나19, 호흡기세포융합(RSV) 바이러스 유행이 더해져 3개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가 동시에 유행하는 트리플데믹(tripledemic)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감기와 유사한 증세를 보이는 휴먼 메타 뉴모(HMP) 바이러스 감염도 대규모로 감염이 발생한 중국에서 유입되어 늘고 있다.
정재훈 고려대의대 예방의학 교수는 “지난 4년간 코로나19를 제외한 계절성 호흡기 감염병에 대한 인구 집단의 면역 수준이 크게 떨어져 있기에 앞으로 인플루엔자 등 다른 감염병 유행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며 “인플루엔자는 지금부터 2주 이상 높은 수준의 환자 발생이 예상되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 코로나19, RSV, 휴먼 메타 뉴모 등이 미지의 바이러스가 아니고, 잘 알려져 있는 바이러스이고 감시 정보도 충분하기에, 주의를 최대화해서 감염을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시 마스크를 써야 할 상황
특히 감염 시 중증화될 우려가 큰 고령자와 만성질환자,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 등은 개인 방역 활동에 철저해야 한다. 호흡기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3밀’ 즉 환기가 안 되는 밀폐 환경, 많은 사람이 모이는 밀집, 여러 사람과의 밀접 접촉 등을 피해야 한다. 마스크를 코로나19 사태 수준으로 다시 써야 할 사람은 치료 중인 암 환자, 천식·심장 질환·만성 폐질환자,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병의원을 자주 찾는 사람, 주변에 호흡기 감염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있는 경우 등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본인에게 발열이나 기침 등 호흡기 감염 증세가 생기면 가족이나 주변에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본인 스스로 마스크를 써야 한다”며 “증상 발생 이틀 이내에 병의원에 가서 바이러스 검사를 받고, 인플루엔자 양성이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서 중증화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플루엔자 백신을 아직 안 맞았으면, 지금이라도 맞는 게 좋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