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회생 사건을 전문으로 다루는 서울회생법원에 접수되는 파산 신청서에 최근 파산 사유를 ‘코로나’로 적시한 신청서가 부쩍 늘었다. 서울회생법원 소속 한 파산 관재인은 “한 달에 20여건 개인 파산 상담을 하는데 요즘엔 다들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한다”고 전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끝내 두 손을 들고 파산을 선언하는 것이다.
지난 7월 개인 파산 선고를 받은 40대 A씨의 경우에도 ‘코로나로 인한 매출 급감’을 파산 신청 사유로 적었다. 그는 2013년부터 치킨집을 운영했다. 한때는 장사가 잘돼 종업원이 10명이었고 연 매출이 3억원을 넘겼다. 그러나 주변에 경쟁 점포들이 하나둘 들어서며 장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임차료와 인건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급기야 A씨는 보험을 해약하고 차량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며 가게를 운영해왔다. 자연히 빚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자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많지 않던 매출이 3분의 1로 급감했다. 빚은 1억원까지 늘었는데, 그가 가진 재산이라곤 월셋집 보증금 2000만원이 전부다. 가게를 운영할수록 빚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어 A씨는 결국 파산 신청을 했다.
파산은 재산보다 빚이 많고 소득이 없어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법원의 심사를 거쳐 빚 전체를 갚지 않아도 되도록 면책해 주는 제도다. 기업은 기업 파산, 자영업자 등 개인은 개인 파산을 이용한다. 이와 비슷한 ‘회생’ 제도도 있다. 이는 소득 중 기초 생계비를 제외한 나머지로 3년간 빚의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 채무는 면제받는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인지 유독 파산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조차 없으니 소득의 일부로 빚을 갚아나가는 회생 대신 단 한 번의 ‘빚잔치’로 끝내는 파산 신청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 전국 법원의 개인 회생 접수 건수는 지난 4월 7520건, 5월 6816건, 6월 7617건, 7월 7201건으로 의미 있는 증감 추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 파산 신청은 급증했다. 4월 3945건, 5월 4031건에서 6월엔 4894건, 7월 4895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1000건 가까이 늘었다. 서울회생법원만 따질 경우 6월 1024건, 7월 1094건으로 모두 1000건을 넘기며 2017년 개원 이래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개인 파산 급증에는 코로나가 몰고 온 자영업자의 몰락이 있다. 2016년부터 프랜차이즈 간이음식점을 운영해온 30대 B씨도 지난 7월 파산 선고를 받았다. 2017년부터 주변 상권들과 경쟁하느라 빚을 내 가게 운영 자금을 마련하며 겨우 버텨왔으나 코로나를 이기진 못했다. 그는 빚이 2억원이나 되지만 재산이라곤 월세 보증금 500만원뿐이다.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파산자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식당·마트 등에서 일하다 코로나가 터진 뒤 일자리를 잃은 60대 초반 C씨가 그런 경우다. 5000만원 카드 빚이 있는데, 일하고 있을 땐 조금씩 갚아나갔지만 일자리를 잃자 버틸 재간이 없었다.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던 60대 초반 D씨도 “일자리가 없다”며 파산 신청을 했다. 구청 공공 근로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50대 여성도 “코로나로 공공기관 일자리조차 없어졌다”며 파산 신청을 했다. 법원 관계자는 “코로나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회생보다 파산의 이용 빈도가 더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산과 회생
파산은 재산보다 빚이 많고 소득이 없어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을 때 법원의 심사를 거쳐 전체 빚을 탕감해 주는 제도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 자산만 남기고 나머지 자산은 처분해 빚을 갚는 일종의 ‘빚잔치’다. 파산 선고 후 숨겨둔 재산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빚 전체를 탕감(면책)받을 수 있다. 면책 후 복권(復權)을 받기 전에는 공직 등 200여 직업에 취업이 금지된다.
회생은 소득이 있는 사람이 기초 생계비를 제외한 나머지 소득으로 3년간 빚의 일부를 갚아 나가는 제도다. ‘빚의 일정 부분(개인마다 비율은 다름)을 갚겠다’는 변제 계획서를 내고, 이를 법원에서 승인받아 계획대로 갚으면 나머지는 면제된다. 취업이 제한되는 불이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