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영향으로 225㎜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지난 3일 오전 7시 30분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송정4리 마을 앞 송정교는 불어난 강물에 상판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7시부터 다리 상태를 유심히 살피던 송정4리 마을 주민 박광진(59)씨가 황급히 나서서 다리를 지나던 차량을 향해 팔을 휘두르며 뒤로 가라는 신호를 했다. 다리를 절반 정도 지나던 승용차는 박씨의 신호를 보고 깜빡이를 켜고 후진했다. 이로부터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리 허리 상판이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잘려나가면서 일부가 붕괴했다. 만약 박씨가 차량을 막지 않았다면,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송정교 영웅’의 활약상은 평창군이 설치한 방범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박씨는 4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살면서 사람을 살린 어제가 가장 보람된 하루였다”고 말했다. 그는 40년 경력의 굴착기 기사다. 여러 교량 건설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는 2년 전 주민 580여명이 사는 4리 마을 초입에 있는 송정교 인근으로 이사했다. 다리에서 집은 거리가 30m에 불과해 실시간으로 교량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지난 3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송정교 앞에서 박광진씨가 다리가 붕괴하기 전 다리를 건너던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박씨는 “오전 7시쯤 창문에서 봤더니 다리 모양이 이상했다”며 “불어나는 강물에 다리가 붕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출근 시간대인 7시 30분부터 차량 통행이 늘어났다. 차량이 지날 때 다리 한가운데가 출렁다리처럼 울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측면에서 봤더니 다리 가드레일이 휘었고, 중간 부분 상판이 ‘一' 모양에서 ‘V'로 가라앉아 위험을 감지할 수 있었다”며 “아차, 큰일이다 싶어 어떻게든 차량 통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홀로 차량 통제에 나섰다.

그는 오전 7시 26분 홍준균(49) 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리가 불어난 강물에 휘청인다”며 “빨리 조치를 하지 않으면 차가 물에 빠진다”고 말했다. 홍 이장은 이후 마을 주민 580여명에게 ‘다리를 건너지 마라’는 긴급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진부면사무소 건설계에 “마을 다리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다른 수해 현장을 둘러보다가 홍 이장의 연락을 받고 송정교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송정교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노후 교량이라 수년 전에도 보수 공사를 했다. 송정 5개 마을에는 인도교를 포함해 다리가 3개 있는데, 상류에 위치한 송정교로 차량이 가장 많이 다닌다. 송정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의 대표 관문이다.

박씨는 “오래된 다리라도 강물에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수해 복구를 도왔다. 굴착기를 이용해 산사태로 막힌 길을 뚫는 작업을 했다. 박씨는 “오늘은 지인이 수해 복구 현장에 가자고 해서 하루 생업을 포기하고 손을 보탰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강원 평창군 진부면 송정교 앞에서 박광진씨가 다리가 붕괴하기 전 다리를 건너던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