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 12시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여기저기서 빠른 템포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휴대용 스피커로 증폭돼 나오는 소리였다. 이 음악에 맞춰 술 취한 젊은 남녀가 곳곳에서 춤을 췄다. ‘야외 클럽’을 예상이나 한듯 야광 머리띠와 야광 팔찌를 준비해온 이들도 많았다. 흥에 겨워 10여명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거나,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처음엔 남자들끼리, 혹은 여자들끼리 둘러앉아 술과 음식을 나눠 먹던 팀들도 상당수는 밤이 깊어가면서 하나둘 옆자리 이성(異性) 팀과 합석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이후 첫 금요일 풍경이었다.

한강공원 편의점에 수십명 줄 - 지난 4일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잠원한강공원의 편의점 앞에 40여 명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편의점 안에서는 20여 명이 몰려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조유진 기자

식당과 주점의 야간 매장 영업을 완전 금지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상태에서 주말을 맞은 20~30 청년 세대는 한강시민공원 등 천변(川邊)과 숙박 시설 등을 ‘코로나 통금 해방구’로 삼았다. 코로나 방역 체제 장기화에 지친 시민들은 강가에서 클럽 음악을 틀며 흥을 냈고, 젊은이들은 즉석 ‘헌팅’을 벌이기도 했다.

4일 자정쯤 서울 관악구 도림천변은 번화가 술집을 연상시켰다. 약 300m 구간 안에 시민 250여명이 계단과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대화를 나눴다. 떡볶이나 피자 등 안주도 다양했다. 20대 여성 무리는 케이크를 놓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봉천동 주민 서모(30)씨는 “퇴근 후 친구와 식당에서 한잔하다가 밤 9시가 되니 식당 문을 닫길래, 아쉬운 마음에 소주를 사서 나왔다”고 말했다. 즉석 헌팅도 이뤄졌다. 20대 남성 3명 중 한 명이 여성 3명에게 다가가 물티슈를 빌리고, 잠시 뒤 “고마우니 소주로 갚겠다”며 합석을 제안했다. 여성들은 선선히 일어나 남자들 자리로 옮겨갔다.

비슷한 시각 서울 강남구 잠원한강공원 편의점 앞에 40여명이 줄을 섰다. 가게 안은 술과 안주를 사려는 손님으로 바글바글했다. 손님들은 서로 어깨를 부딪혀가며 상품을 집어들었다. 곳곳에서 먹고 마시느라 떠들썩했고, 노트북을 가져와 영화를 함께 보는 연인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은 토요일에도 재현됐다. 5일 오후 10시쯤 여의도 한강공원은 공공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대기 행렬만 15m가 넘었다. 비슷한 시각 망원 한강공원에도 진입하려는 차들이 급증하면서 강변북로까지 정체를 빚었다.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운동하러 나온 김모(50)씨는 “열대야로 피서객이 몰리는 한여름에도 이렇진 않았다”고 했다.

강변 등 야외로 나오는 대신, 반대로 호텔·모텔 등 숙박업소에서 2·3차 술자리를 이어가는 사람도 많다. 직장인 조모(29)씨는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레지던스 호텔을 빌려 직장 동기 4명과 술판을 벌였다. 안주는 배달 앱을 이용해 족발·보쌈 세트를 주문했고, 술은 호텔 주변 편의점에서 직접 사왔다. 방값·음식값·술값을 다 합해 1인당 4만원 정도씩 들었다. 자리는 새벽 1~2시쯤 끝났고, ‘숙박업소’를 이용했음에도 자고 간 사람은 없었다. 조씨는 “불특정 다수와 섞일 필요 없으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며 “조만간 또 방을 잡을 예정”이라고 했다.

강화된 거리 두기, 한강에 몰린 사람들 -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시행 이후 첫 금요일이었던 지난 4일 오후 11시쯤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하고 있다. 대부분 젊은 층으로, 이들 중 일부는 마스크를 벗은 채 대화를 나눴다. 거리 두기 2.5단계로 식당과 주점의 야간 영업이 금지되면서 ‘음주 해방구’가 된 한강공원이 감염 위험지대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종찬 기자

주말 이틀간 술 마시기 좋은 ‘큰 방’은 예약조차 쉽지 않았다. 숙박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지난 4~5일 이틀에 걸쳐 오후 6시 30분 기준 신촌·홍대·합정, 강남·역삼·삼성·논현 일대 모텔 130곳의 예약률을 살펴보니, ‘파티룸’ 등 다인실을 보유한 모텔 21곳 중 19곳이 이미 만실(滿室)이었다. 신촌 M모텔 관계자는 “퇴근한 직장인들이 평일 저녁 8~9시쯤 들어와 술을 먹고 밤 10시~11시쯤 퇴실한다”며 “파티룸을 찾는 전화가 하루에도 20통 넘게 걸려온다”고 했다.

PC방이 영업을 중단하자 고사양 PC가 설치된 ‘게임텔’도 특수를 맞았다. 모텔 업주들은 “비싸서 대실이 안 나가던 ‘게임룸’이 요즘 평일 오전·오후 만실이다”고 했다. 숙박 업체를 대상으로 PC 대여업을 하는 문승균(56)씨 “최근 1~2주 사이 고사양 PC 설치를 문의하는 모텔이 평소 대비 20~30%가량 늘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 장소에 사람이 몰릴 경우 코로나 감염 위험이 급격하게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강변 등 야외는 일반적으로 실내보다는 감염 위험이 낮지만,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는 불특정다수와 마주칠 경우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며 “모르는 일행과 합석하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