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지금도 집에선 기저귀를 차고 있습니다. 장거리 여행을 가면 제일 큰 생리대를 가방에 넣고 다녀요. 그런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내 자식 지켜주지 못한 죄를 짊어지고 평생 죄인으로 삽니다. 그런데 조두순이 우리 집 근처로 온다고 하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오는 12월 만기 출소를 앞둔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68)으로부터 12년 전 잔혹한 피해를 입은 ‘나영이’(가명)의 아버지 A(68)씨는 20일 본지 인터뷰에서 “조두순이 반성한다면서 굳이 왜 피해자가 사는 안산으로 오느냐”고 했다. 그는 “조두순을 안산에서 떠나게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신용대출을 받아 (이사 비용으로) 2000만~3000만원을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A씨의 딸 나영이는 2008년 12월 등굣길에 조두순을 만나 만신창이가 됐다. 전과 18범이던 조두순은 초등학교 2학년 나영이를 교회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뿐 아니라 온갖 잔혹 행위로 나영이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그런데도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형량을 감경받아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A씨는 안산을 떠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는 ‘끔찍하다, 이사 가자’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영이가 울면서 안 간다고 해서 안산을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나영이가 “장애가 있는 내가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하면 친구를 얼마나 사귀겠느냐, 배척하지 않겠느냐, 여기 있는 친구들은 그래도 나를 이해해주고 많이 도와줬다”고 했다고 한다.
A씨는 “우리 가족은 아마추어 무선에 사용하는 휴대용 무전기를 모두 갖고 다닌다”며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구조 요청을 하면 50㎞ 이내 여러 사람에게 통보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호신용 가스총도 구입할 생각이라고 했다.
12월 13일 만기 출소하는 조두순은 최근 교도소 상담 과정에서 경기도 안산으로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의 아내가 여전히 안산에 살고 있다는 이유였다. 조두순이 거주할 곳은 피해자 가족의 집에서 1㎞도 떨어져 있지 않다. 게다가 피해자로부터 100m 떨어진 곳까지는 접근도 할 수 있다.
A씨에 따르면 나영이를 포함한 가족들은 조두순이 안산으로 온다고 말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일절 조두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나영이 가족에게 ‘조두순 트라우마’는 10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는 일이다. A씨는 “우리 식구는 절대 같이 앉아서 낄낄거리며 TV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을 못 본다”며 “어느 순간 성폭행 관련 뉴스나 이야기가 나오면 나영이가 쓰러져 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나영이는 어려서부터 아예 뉴스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 자취하는 원룸에는 TV가 있었지만 그것마저 치워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주말이나 방학때 집에 와서 TV를 보더라도 유치원생들이 보는 만화만 본다고 했다. A씨는 “애가 TV를 아예 안 보니 사회 지식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나영이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 1년 동안 배변 주머니를 다리에 차고 살았다. A씨는 “처음에는 영화에 나오는 강시와 흡사하게 혼이 나간 상태였다”고 했다. 병원 치료는 물론 처음에는 매주 2번씩,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4년 동안 안산에서 서울 신촌에 있는 해바라기센터(성폭행 피해자 상담·치료시설)를 오갔다. 아버지는 생업을 팽개치고 딸을 챙겨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교실에서 배변 주머니가 터질 때도 있었다. A씨는 “가장 고마운 사람은 선생님”이라고 했다. 배변 주머니가 터져 나영이가 곤란해질까 봐 담임 선생님이 음식물 쓰레기를 담은 봉지를 준비해 갖고 다니다가 배변 주머니 터지면 그곳에 쏟아서 표시 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A씨는 “우리 딸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도와준 선생님, 학부모, 친구들 때문에 안산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조두순이 나영이에게 끼친 범행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어릴 적 나영이는 “언니한테 미안하니 내 방을 따로 하나를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방에서 언니와 2층 침대를 썼는데 배변 문제 때문에 이틀에 한 번은 나영이 침대보를 빨아야 했기 때문이다. 장기(臟器) 복원 수술을 받았으나 여전히 설사 장애를 앓는다. 학창 시절엔 수학여행을 빼먹는 게 안쓰러워 보내놓고도 혹시 친구들 앞에서 실수로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잠을 설친 적도 많다고 A씨는 말했다. 그런데도 나영이는 고등학교 3년 내내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저녁 식사 시간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한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야간자습을 마치고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고 한다.
A씨는 큰 어려움을 이겨낸 나영이가 조두순이 다시 안산으로 오면서 흔들릴까 봐 걱정했다. 그는 “조두순이 반성한다면 왜 굳이 피해자가 사는 안산으로 오려는지 모르겠다”며 “정부나 안산시가 나서서 ‘피해자나 안산 시민이 반대하니 조용한 곳에 가서 살아라’고 설득해 달라”고 했다. A씨는 조두순이 보복이나 압박 의도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두순 같은 흉악범이 1㎞ 안에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보복”이라고 했다. 또 조두순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출소 후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했다는 약속도 믿기 어렵다고 했다. 조두순은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피해자의 기억이 잘못됐다고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조두순은 재판을 받는 도중 법정 방청석에 있는 자신을 볼 때마다 적개심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조두순이 동네 시장에서 우리와 마주치는 일이 없겠냐”며 “오히려 피해자가 도망자 신세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피해자 가족에게 조두순이 가까이 접근하면 경보를 울리는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방안에 “피해자가 스마트워치를 차고 동선을 전부 노출하며 다닌다면 전자발찌와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정부가 내놓은 1 대 1, 24시간 밀착감시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2009년 당시 법무장관이 교도소에 있는 조두순을 면담하고 영구 격리를 약속했으나 제대로 지켜졌느냐”며 “최근 안산에서 국회의원·법무부·경찰이 모여 회의를 하고, 나중에 총리도 대책을 언급했으나 원론적인 얘기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