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의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A(30)씨는 올 추석 고향인 인천으로 올라가 부모님을 뵙는 대신, 연휴 기간 기숙사에 틀어박혀 그동안 보지 못했던 TV 드라마를 몰아 볼 계획이다. 넉 달째 부모님을 뵙지 못한 A씨의 추석 상경을 막은 건 회사였다. A씨 회사는 ‘추석에 수도권으로 상경할 경우 부서장에게 보고하고, 다녀온 뒤 3일간 자가 격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A씨는 “자가 격리는 문제가 아니지만 입사 2년 차 사원이라 인사고과에 불이익이 있을까 두려웠다"며 "부모님도 이해하셨다”고 말했다.
‘민족 대이동’ 기간으로 통하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일부 지방 소재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사실상의 ‘수도권 금족령(禁足令)’을 내렸다. 지난달부터 계속되는 수도권 중심 코로나 감염증 2차 확산 때문이다. 지난 2~3월 확진자가 집단적으로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 방문을 꺼리거나 제한했던 움직임이 이젠 거꾸로 서울과 수도권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기업은 직원의 수도권 방문 계획을 사전에 파악해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올해 초 한 중견기업 서울 본사에서 광주광역시 소재 지사로 장기 파견 간 박모(43)씨는 지사 방침에 따라 추석 때 8세 쌍둥이 아들이 기다리는 일산 집으로 가는 걸 포기했다. 중간 관리자인 박씨는 오는 28일까지 부서원들의 추석 계획을 받아 부서장에게 올리는 업무를 맡았다. ‘웬만하면 이동하지 않게 조정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솔선수범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부장님은 우리 부서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 안 된다는 완강한 입장”이라며 “나는 가는데 직원들에겐 가지 말라고 할 수가 없어서 안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회사에 허위 보고를 하지 않기 위해 ‘묘수’를 고민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경기 수원시에 근무하는 이모(31)씨는 추석 때 김포에 사는 부모를 모시고 충남 보령의 한 펜션에서 지내기로 했다. 회사에서 ‘수도권 다른 지역에 다녀올 경우 보고하라’는 지시에, 부모님과 아예 지방 다른 지역에서 만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씨는 “수원도 수도권인데, 김포로 가면 보고해야 한다는 회사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며 “보령으로 간다면 보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국 ‘방역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사회 분위기가 민간 기업 차원의 직원 사생활 침해까지 용인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과도한 감시 시스템이 정착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