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내년부터 연평균 120억원의 세금을 투입해 2026년까지 총 750억원짜리 공무원 전용 주거 안정 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이 돈으로 시 공무원들에게 금리 연 1%짜리 전세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코로나 충격에 따른 인한 경기 침체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전세난이라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고 있는데 공무원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 골몰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서울시와 시 공무원 노조, 시의회 등에 따르면 시의회는 지난 15일 본회의에서 ‘서울시 공무원 주거안정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조례안은 내년부터 2026년까지 6년간 서울시 재정 461억원과 2016~2020년 사이 이뤄진 대출의 회수금 266억원 등을 합해 총 750억원 규모 기금을 만드는 게 골자다. 이 기금으로 무주택자인 서울시 공무원에게 연 1% 금리로 최장 6년간 최대 1억원의 전세 자금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 공무원의 주거 안정을 통해 사기를 높이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 8월 12일 조례를 발의했다.

/조선일보 DB

서울시 공무원에 대한 전세 자금 대출은 2007년부터 있던 복지 제도지만 최근 들어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전세 대출에 들어간 예산은 2018년 58억원, 작년 68억원 규모였지만 올해는 130억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별도 기금을 만들어서 2023년 이후부터는 연간 총 180억원 안팎까지 지원 규모를 늘리겠다는 게 서울시 방침이다.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에 따르면 시 예산을 쓰는 대신 기금을 만들어 운영할 경우, 기금을 집행하는 주체는 사업비 20% 범위 내에서 의회 심의 없이 자율적으로 예산을 쓸 수 있다. 시의회의 감시·감독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만큼 공무원들이 이 돈을 방만하게 운영할 수 있는 여지도 생긴다는 뜻이다. 실제 이 조례에는 전세 대출 외에 ‘공무원의 주거 안정과 관련해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에도 기금을 쓸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코로나발(發) 경기 침체에다 전세난까지 겪는 서민들 입장에서는 무주택 공무원에게 연 1%로 1억원을 최장 6년간 대출해주는 것 자체가 특혜로 비칠 측면도 많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무주택 청년·신혼부부 전세보증금 대출의 경우 부부 합산 소득이나 자녀 수 등 일정 조건을 맞춰야 최저 금리인 연 1%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주택도시기금에서 지원하는 중소기업 취업 청년 전·월세보증금 대출(연 1.2%)이나 청년 전용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연 2.3~2.7%)은 아예 금리가 더 높다. 한태식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시가 낸 주거안정기금 조례에 대한 심사 보고서에서 “기금을 만드는 것이 과도한 복지 혜택으로 비칠 우려는 없는지와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지에 대해서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최근 재정이 빠르게 악화하고 있는데도 공무원 복지만 챙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는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세 차례 추경을 통해 예산을 44조원까지 늘렸다.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지방채도 역대 최대 규모인 3조원어치를 발행했다. 재원 마련을 위해 버스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 공무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백억원 규모 기금을 예산으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막 공무원이 된 젊은 층이나 신혼부부 등은 아직 시중은행에서도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없고 서울 전세금이 많이 올라 시에서 지원하려는 것”이라며 “전세 대출용으로 잡혀 있던 예산을 기금으로 쌓는 데다 대출 사업이기 때문에 재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